슈퍼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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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2.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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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방학이랍시고 또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녔다. 하나는 이달 4일부터 시행된 연명 의료결정법과 직결된 사전연명 의료의향서 작성에 관한 교육이었고, 다른 하나는 슈퍼컴퓨터 겨울학교였다. 둘 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배우는 것이라서 즐거웠는데 위의 것은 돈이 들었고(지도자자격증이라나 뭐라나) 뒤의 것은 무료여서 더 신났다. 컴퓨터 이야기 좀 해보자.

컴맹이라서 용어라도 알아두자는 생각으로 강의를 들었고,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지만 직접 실습해볼 수 있었다. `실'(thread)과 `줄'(process)을 구별해서 더하기와 곱하기를 하고 하드웨어 위에 커널(kernel)이, 그 위에 셀(shell)이, 그 위에 어플과 유틸리티가 있는 것도 알았다. 순차에서 병렬로 바꾸더라도 성능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암달의 저주(Amdahl· 1967)는 낙관적인 구스타프손의 법칙(Gustafson· 1988) 앞에서 아직도 얼쩡거리고 있었다.

나는 2000년 `디지털 문화의 철학적 이해'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디지털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다. 인문대 학장이 인문대 20주년 기념식이라면서 학생도 재밌고 교수도 재밌는 것 하나 발표해달라고 해서 그런 건 없다고 거절하다가 찾은 제목이었다. 도서관에서 관련 책 십여 권 빌려다가 정리했는데 다행히 성공적이어서 행사장을 찾은 공과대학장이 재밌다고 내 발표를 끝까지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강의를 나오던 문학평론가도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가 관여하는 비평지에 싣자고 해서 지상에 공개됐다. 그래서 돈을 두 군데(발표료와 원고료)에서 받아 학장에게 이실직고하고 밥을 산 것도 떠오른다.

그런데 큰 수확은 내 글을 읽고 컴퓨터 운영체계를 노량진학원에서 공부해서 지금은 수억 연봉을 받는 철학과 졸업생이 생겼다는 것이다. (철학과라고 너무 홀대하지 마시길. 기막힌 아이디어는 역시 철학과에서 나옵니다~) 그 녀석은 4년 내내 나에게 차를 얻어먹고 다녔는데 그러다 내 글을 보고 거기에 소개된 리눅스(linux)에 꽂힌 경우다.

리눅스가 뭔가? 한마디로 공짜 OS(operating system)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돈 주고 사야 하는데 그것은 돈 받으면 안 된다. 고쳐 쓸 수 있지만 돈 받고 팔면 안 된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리눅스의 이념은 아무나 써도 된다는 `프리 소프트웨어'에 있다. 그것과 관련된 운동이 GNU프로젝트다. 그들은 카피 라이트(right)를 주장하지 않고 카피 레프트(left)를 주장한다. 쓰는 것을 못 쓰게 하는 것 말고는 다 된다는 공유의 자세다. 훌륭하지 않은가.

우리가 한글을 쓰면서 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세종대왕께 더 고마운 것과 같다. 거기에는 MIT에 있던 스톨만(Richard Stallman)이라는 털북숭이가 있었다. 한국에도 온 적이 있는데 강남의 5성급 호텔에서 강연료를 10만원씩 받아 말과 하는 짓이 다른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사실 그는 슬리핑백을 갖고 와서 사무실에서 잤으니 주최 측의 농간 또는 실책이었음이 확실했다.

이번 슈퍼컴퓨터 강의를 통해 리눅스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다. 라이센스 문제도 있지만 안정적이기 때문이란다. 인텔에 앞서 GNU컴파일러(GCC)도 쓰이고 있었는데, 네 번째 교육용 슈퍼컴퓨터시스템인 타기온2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고 복잡하긴 하지만 강력하고 기능이 다양한 편집기인 Emacs를 스톨만이 Lisp언어로 만든 것(1976)도 알았다.

GNU진군가를 부르던 그의 쉰 목소리가 떠오른다. 크래커가 나쁘지 해커는 나쁘지 않다는 노래였다. 정보의 공유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나도 그의 꿈에 공감한다. 정보독점이 권력이나 부가 되지 않는 세상, 진정한 디지털 평등세계다. 대규모의 기계시스템을 극소수가 점유하지 않는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짜로 쓰는.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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