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의 원을 들어준다는 것
산 사람의 원을 들어준다는 것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8.01.2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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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야 좀 나누어 먹어라.” 혼자만 먹을 것을 차지했던 저에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배고프던 시절에 먹을 것이 생기면 배고픔을 달래려는 욕심에 형제도 친구도 안 보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혼자만 먹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야 이놈아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먹고 싶어서 저리 목매는 동생 소원하나 못 들어 주냐! 그리 찌질한 사람이 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텐데~” 라며 걱정하셨습니다.

어깨너머로 간신히 한글을 깨치셔서 제 초등학교 시절 숙제나 겨우 도와주시던 어머님의 말씀 “산사람의 소원 하나 못 들어주는 찌질한 사람이 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아릿해집니다.

중학교 때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좌우명을 하나씩 지어보라 하셨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남을 위해 살자'라고 써서 제출했는데 그때 제출했던 좌우명이 저의 평생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남을 위해 살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쓸모가 있으려면 무엇이든 남에게 도움을 줄 만큼의 능력이 저에게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에게 없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보아 넘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배워두어야 언젠가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수 있으리란 생각에 무슨 일이든 눈여겨보는 자세가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살다 보니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불이 나면 119에 전화해 구원을 요청하듯 그때 상황 따라 부탁하면 들어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입니다. 필요한 것이 옆집에 있어도 그 집 사람들과 소통을 안 하고 지낸다면 그것은 그림의 떡처럼 그저 바라볼 뿐 도움을 청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 중 나에게 다가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내 입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냉정하게 뿌리치고 말까요? 생면부지의 사람이 다급해서 나에게 간청해도 그냥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아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안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복 짓는 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뿌리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자명해집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원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복'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거나 내가 상대방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남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도움을 주어야 도와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고 서로 간에 서로를 잘 알고 있어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서로 간에 알고 지내는 것이 곧 소통입니다. 장벽을 헐고 나의 상황을 알려주고 상대방의 상황을 듣기도 해야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을지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렵거나 힘든 것이어서 나 혼자 속으로만 견디고 아무도 모르게 산다면, 그것은 좋은 물건들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사용할 줄 모르는 것들이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명절에만 만나고 안부를 묻고 하지 말고 한 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사이라면 전화로라도 인사를 나누고 어려움은 없는지 살필 일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어려움도 이야기하며 함께 세상사를 헤쳐나간다면 그것이 곧 복을 짓고 받으며 나누고 살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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