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석
전명석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7.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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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혼자여행에 관한 글로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았다.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혼자 다니면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둘이 다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둘이 여행을 하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라는 이도 있었다. 그분은 전국을 혼자서 걸으면서 순례한 사람이니 나보다도 한 수 위인데도 말이다. 스무 살 때 혼자 다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일화다.

저녁 무렵이었다. 추웠고 어두웠다. 시외버스의 맨 끝에서 정처 없이 실려 가고 있었다. 해는 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아있던 장발청년에게 물었다.

“혹 근처에 볼만한 게 있나요?”

그의 대답은 머뭇거렸지만, 우리 동네에 있는데, 였다.

“촛대바위라고 있어요. 볼만 합니다. 같이 내리면 됩니다.”

퇴근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맨 뒷자리에서 앞에까지 나오는데 복잡했다. 게다가 큰 배낭까지 메고 있었으니 더욱 거추장스러웠다.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침묵을 깨고 그가 물었다.

“잠은요?”

“예, 어디 민박이라도 구하면 되지요.”

“그럼 나와 함께 잡시다. 회사에 숙직실이 있어요.”

꽤나 큰 사무실이었고 건물 끝에 조그만 당직실이 붙어 있었다. 도착해서 그는 찬밥을 미역줄거리와 함께 볶아 저녁으로 내주었다. 당시 강원도의 술인 경월소주 1병도 함께 했다. 그리고는 금방 자리에 누웠고, 골아 떨어졌다. 추위를 피한데다가 배도 불렀고 취기도 돌았다. 달콤한 잠이었다.

“일어나요. 나 사람들 태우러 나가니까, 알아서 가쇼.”

그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운전면허교습소였고, 훈련생들을 태우러 나가니 잘 가라는 이야기였다.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오면서 근처의 매점에 들렸다.

“왜 그 사람 이름은 물어요?”

의심스런 반응에 나는 “어제 같이 잤고 밥도 술도 얻어먹었는데 서로 통성명도 안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들은 대답이 `전명석'이고, 당시 갖고 다니던 수첩 뒤에 적어놓아서 지금도 그 이름을 외운다.

15년이 지난 어느 여름,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어 민박집 주인장에게 그 이름을 물었더니, 옆집 아들인데 주말이라 오늘 동해에서 애들 데리고 집에 왔다는 것이었다. 저녁에 만나, 회 한 상을 대접하며 옛날이야기를 했더니, 그의 기억에 나는 전혀 없었다. 화물차를 몬다고 했고, 아이가 둘이라고 했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15년 전 겨울, 애국가 방영 때 TV에 한동안 등장하던 촛대바위에는 군인초소가 있었다.

상상은 잘 안 되겠지만 배도 들어왔다.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줍고 민가에서 물을 얻어 밥을 해먹으려 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군인이 다가오더니 초소에 가서 같이 먹자고 했다.

“민간인 쌀 좀 오랜만에 먹어봅시다. 반찬은 짠지지만 내가 준비하지요.”

청주교대를 다니다 군대에 왔다는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추암'(錐巖)으로 불리며 관광명소가 되었고 민가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초소가 있던 자리에는 관광 데크가 설치되었다.

그날 나는 레미콘트럭을 얻어 타고 동해항 건설현장을 돌아, 동해선 철길을 하염없이 걸어 북상했다. 터널은 정말 무서웠다. 대신, 사람들은 무섭지 않았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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