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앨리스
반지하 앨리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7.08.2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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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점심을 먹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경복궁역을 나와 가까운 곳에 들어갔습니다. 70년 전통으로 소문이 난 집이기에 안심하고 기본 메뉴를 시켰죠. 콩나물국밥. 폭염으로 시달린 몸을 얼큰한 국물로 달래주고 싶어서요.

제가 그날 몇 번째 손님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삼백 번째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루에 삼백 명만 손님을 받는다는 `삼백집'이었는데, 국물을 삼키는 중에도 다른 분들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요.

식당을 나와서는 곧장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영웅 기드온(Gedeon)의 삼백 용사라도 된 듯 기운차게 목적지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을 보려구요. 시, 사진, 에세이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현림 작가가 `반지하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마련했거든요.

몇 년 만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되는 자리가 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전에 언제 가겠다고 연락을 하지 않았거든요. 괜히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품만 보고와도 괜찮다고 여겼죠.

아무리 약속을 정한다 해도, 하늘이 허락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의 몫이야 장담할 순 없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갤러리에서 작가의 손을 반갑게 잡았답니다.

짧게나마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작품마다 담겨져 있는 작가의 사연과 시선과 갈망이 느껴졌기에 한 점 한 점이 소중하게 다가오더군요.

사진전은 지난달에 나온 신현림 작가의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와 동명(同名)의 전시회라서, 그의 시들과 연결을 해야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순아 시인의 말대로 “현실에 응전하는 도발적 상상력”을 드러낸 60편이 넘는 그의 시들 가운데 첫 번째로 소개된 `반지하 앨리스'란 제목의 시라도 옮겨볼게요.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 든 앨리스들과 만났다//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1”이나 `코끼리가 되기 전에'와 같은 시들을 옮기고도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의 이런저런 시를 읽다 보면 `꿈의 아궁이에 해를 넣고 끓인 사랑 밥'을 맛볼 수도 있더군요.

“반지하 집에서 산 10년, 시집도 10년 만이다. 그사이 육체의 집도 반이 지하로 갔다…내게 혁명은 나를 넘어 남의 숨결을 느끼고, 남을 나같이 여기는 연민과 나눔이다”라는 시집 앞머리에 있던 `시인의 말'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백이요, 반지하 앨리스들을 만들어낸 매섭기가 짝이 없는 이 시대를 위한 고해성사(告解聖事)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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