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의 가문 혜경궁 홍씨와 한중록
벽초의 가문 혜경궁 홍씨와 한중록
  • 김홍숙<문화해설사 · 소설가>
  • 승인 2017.07.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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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홍숙<문화해설사 · 소설가>

혜경궁 홍씨는 을묘년(1735년) 6월 18일 오시에 외가인 서대문 밖 평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가 죽은(1815년) 지 73년 후에 그 가문에서 벽초 홍명희(1888년)가 태어난 셈이다. 혜경궁의 태몽은 아버지께서 꾸셨는데 `흑룡이 혜경궁의 어머니께서 거처하시는 방 반자(천장)에 서린 것을 보았다 한다. 그런데 낳고 보니 여자였으므로 아버지께서는 꿈의 징조와 같지 않아 의심하였다고 한다. 혜경궁의 조부와 증조할머니는 “이 아이가 비록 여자 아이지만 보통 아이와는 다르구나.” 라고 하며 기대하였다고 한다.

조부께서도 “허허 이 아이가 작은 어른이구나, 너는 일찍 결혼을 할 게야.” 하였다.

혜경궁은 어른들의 예견처럼 어린 나이인 10살에 세 번의 간택을 거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1744년에 사도세자와 혼례를 이룬다. 부모님께도 손안에 든 구슬처럼 사랑받던 혜경궁 홍씨는 시부모님이신 영조와 선희궁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8세에 첫 아들을 잃고 10년 후에는 남편 사도세자를 잃는 비운을 겪으면서 그녀의 삶은 기구해진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은 여섯 권이 전하는데 1권은 조카인 홍수영의 부탁에 의하여 쓰게 된다. 혜경궁이 홍씨 가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태어나 궁에 들어와 시부모님과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일, 정조를 낳고 환갑을 맞기까지의 여러 일 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였으므로 한가하게 썼다고 하여 한가할 한(閑)을 써서 한중록이라 한다.

2권과 3권부터는 달라진다. 임오화변의 주체인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위태했던 일들의 기록이다.

사도세자의 비범한 탄생과 뛰어난 자질, 죽은 경종의 궁인들에게 어린 세자를 보육하게 한 영조와 선희궁에 대한 원망, 사도세자가 문보다는 무를 좋아하게 만든 경종의 궁인들에 대한 미움, 사도세자의 기이한 병과 부자간의 갈등, 영조의 유별난 자식 편애도 한몫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사도세자의 비행으로 겪은 마음고생, 정조의 관례와 혼례, 임오화변 당시의 상황, 세손의 안위를 위해 영조에게 세손을 부탁한 일 등을 기술하고 있다.

남편인 사도세자를 안쓰러워하다가도 주변을 원망하는 글을 적고 있다.

4권은 영조가 세손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은 데 대한 안타까움, 화완옹주에 대한 원망과 친정집의 안 좋은 일은 모함이라며 동생 홍낙임을 변호하고 있다.

5권은 화완옹주의 양자인 정후겸과 김귀주의 이간으로 홍씨 집안이 겪게 된 일을 적고 있다. 홍국영과 그의 아버지 홍낙춘에게 벼슬을 주지 않은 일로 앙심을 품은 홍국영이 훗날 정조의 신임으로 권력을 쥐자 혜경궁 홍씨의 중부 홍인한과 동생 홍낙임을 대역 죄인으로 몰고 간 일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6권은 정조의 후사로 순조를 낳은 일, 정조가 순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에 사도세자의 일과 외가의 죄를 씻어 주겠다고 혜경궁 홍씨에게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혜경궁 홍씨는 이 글을 읽을 순조에게 정조가 한 약속을 지키도록 청하고 있다.

한중록은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가 벌인 당쟁의 기록이다. 노론 영수의 딸인 혜경궁 홍씨. 그녀의 시선으로 볼 때 정국은 소론과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서로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야 하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영조는 노론의 지지로 왕이 되었지만 종종 소론의 편을 들며 경쟁을 부추긴다. 그러나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지나친 분쟁으로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는 비극과 왕권에 대한 신하들의 끊임없는 도전, 정조가 죽은 후 어린 순조의 등극이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이어져 풍파를 만들어 낸다. 독자들은 혜경궁 홍씨의 삶을 이해하고 그녀의 시선에서 한중록을 읽는다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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