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소니아의 후손
쿡소니아의 후손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7.07.02 1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 박윤미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겹쳐서 화분을 만들고, 땅콩 세 알씩 넣어 창가에 놓아두었다. 땅콩 수확을 기대한 게 아니라 넓은 창가 볕이 아까워서였다. 동료들도 틈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싹이 나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하나였다.

그런데 싹이 나기도 전에 투명한 페트병 안에 뿌리가 길게 내려오는 것이 선명히 보인다. 아래로 내린 굵은 뿌리에서 작은 뿌리가 나오고, 더 작은 잔뿌리가 나왔다. 실 같은 뿌리 끝은 물과 양분을 찾아 의식적으로 팔을 뻗는 것처럼 힘이 있다. 참으로 신기하다.

인류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지구는 약 46억년 전에 생겨났는데 거의 40억년이라는 가늠도 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육지에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땅덩어리 모양도 지금과 아주 달랐고 화성처럼 황량한 모습이었다. 바다는 지금보다도 넓고 깊었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품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오는 시도를 했을 것이다. 육지의 강력한 매력은 태양에너지였다. 화석이라는 증거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바다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와 번성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식물은 쿡소니아(Cooksonia)라고 한다. 지구가 생겨난 지 40억년도 더 지난 약 4억3천만년 전이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지구 역사를 생각하면 아주 오래전도 아니다.

지상으로 올라와 따뜻하고 풍부한 태양에너지를 온몸으로 받게 되었지만 바다에서와 달리 건조한 대기와 마른 토양의 환경에서 쿡소니아가 겪었을 어려움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물에 녹아있는 영양분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훨씬 더 넓은 표면적을 만들고 물과 영양이 있는 곳으로 뻗어가도록 끝부분의 감각을 발달시켰다. 바로 뿌리였다. 그러자 몸을 더 단단히 지탱할 수 있게 되는 효과까지 생겼다.

개척자 쿡소니아의 후손들은 더더욱 진화를 이어갔다. 수많은 잎을 만들어 태양빛을 더 잘 받아들이도록 했고 심지어 빛이 약한 계절에는 스스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영양분이 된다. 오늘날 지구상에 식물과 동물의 번성은 그렇게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빛을 꿈꾸고 낯선 이상향으로 진출하는 용기 있는 시도, 끊임없는 적응의 노력, 그리고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행운의 요소까지 자연의 역사는 인간의 삶과 닮아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이 프랙탈이 듯 삶도 프랙탈이다. 작게 들여다봐도 단순한 법칙이며 복잡해 보이지만 넓게 보아도 단순하게 설명된다.

에너지와 영양을 흡수하는 뿌리와 잎의 성공은 결국 단순한 표면적의 법칙이고 삶도 이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접하는 모든 것과 흡수하는 영양과 에너지 말이다. 여름철이면 그 긴 지구의 시간 동안 서서히 진화하며 육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식물들, 자연에 적응하는 지혜가 농축된 명작들에 절로 경이감을 느끼게 된다.

화분에는 며칠 되지 않아 흙이 소복이 올라오더니 곧이어 갈라진 틈으로 반쪽짜리 땅콩을 옆에 달고 초록빛 싹이 삐쭉이 나왔다. 하루하루 자라는 속도가 놀라워서 이러다가 땅콩을 수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동료들이 정겨운 농담을 한다. 잠시 고개 들어 창가를 보면 지구의 명작이 지구의 생명체로서는 다소 초보인 인간에게 손짓한다. 가지 끝마다 달린 4개의 동그란 잎을 흔들며 오늘의 삶도 행운이 가득하여지라고 응원하는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