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공중을 날다
생각이 공중을 날다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6.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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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그것이 얼마나 오래전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전화기가 발명되기 전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여튼 오래전에 어떤 사람이 “미래에는 생각이 공기 중을 날아다니는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독자들께서는 이 말의 출처를 밝히지 못함을 양해하기 바란다. 일부러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어디에서 읽은 것인데 지금은 자료도 없고, 기억도 희미하고, 인터넷을 뒤져도 내 실력으로는 찾을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생각이 공중을 날아다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지금 실제로 생각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미국에 있는 내 딸에게 전화로 뭐라 뭐라 지껄이는 것은 내 생각이 전파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가 미국까지 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인터넷망은 전 세계에 걸쳐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망은 바로 생각들이 날아다니는 망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어령 박사께서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너무나 많은 생각이 날아다녀서 어느 놈을 잡아서 글에 넣을까 바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이때 날아다니는 생각은 인터넷에서 날아다니는 생각이 아니라 이어령 박사 머릿속에서 날아다니는 생각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뉴런을 통해서 날아다니는 생각이나 인터넷망에서 전파를 타고 날아다니는 생각이나 생각이 날아다니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따지고 보면 뉴런 속에서 전달되는 신호도 결국은 전기적 신호이니 그게 그거다. 그런데 그 예언자는 대단한 예언을 하기는 했지만, 알고 보면 이미 그 시절에도 생각은 공중을 날아다녔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말은 생각이고 이 생각은 소리라는 공기의 진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막을 진동시키고, 이 고막의 진동은 그 사람의 뇌에 전달되어 의미가 해석된다. 이렇게 보면 이미 원시 사회에서도 생각은 공중을 날아다녔다.

하지만 원시 사회에서 생각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과 지금 인터넷망에서 생각이 날아다니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 시절에는 생각이 한 사람의 머리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로 전달되고, 생각은 오직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인터넷망에서 날아다니는 생각은 반도체 메모리 칩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질 수도 있고 망각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엉뚱한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 메모리 칩 속에 저장된 생각은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곳에만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얼마나 많이 저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세계 곳곳에 복잡하게 저장되어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내 이름을 쳐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년 전에 어디에서 강연한 내용이 동영상으로 올라 있지 않은가! 그뿐이 아니다. 내가 쓴 책은 물론, 내가 어느 신문사에 기고한 글, 내 이력, 심지어는 내 재산 목록까지 나와 있는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에 연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내 생각을 꺼내 갈 수도 있고, 내 생각을 편집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몸이란 생각이 머무는 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내 생각이 내 육체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에 편재해 있을 때,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생각이 머릿속에만 있지 않고 반도체 메모리 칩 속에 있는 인간, 자기 생각이 우주를 날아다니는 인간, 아무나 생각을 훔쳐 가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자기의 두뇌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편집될 수도 있는 인간, 이런 인간을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계라고 해야 할까?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적 질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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