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주사위 놀이
신의 주사위 놀이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5.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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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진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갈망하는 가장 궁극적인 것이 아닐까? 과학도 자연의 진실을 알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쉽게 우리에게 그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진실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론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 원리다. 불확정성 원리란 전자나 원자와 같은 어떤 입자의 상태(위치와 속도, 운동량과 에너지 등)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입자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관찰을 해야 하는 데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관찰 대상의 상태를 교란시키기 때문에 원래의 상태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당혹하게 하는 것은 이 불가능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할지라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참혹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진실을 밝히는 인간의 노력에 이보다 더 큰 좌절을 안겨 주는 일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니! 이것은 수학에서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와 함께 학자들에게는 크나큰 좌절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이 불확정성을 믿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갔다. 하지만 아무리 아인슈타인이 그랬다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금은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었고 이를 믿지 않는 과학자는 사이비 과학자뿐이다. 이렇게 자연은 그 참, 모습을 깊이 숨겨 놓고 있다. 이 불확정성 원리가 자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사에는 불확정성이 더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머니가 딸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무엇을 먹고 싶니?” 이렇게 물었다고 하자. 아이는 원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그러면 야단맞을 것 같아 “우유!”라고 대답해 버린다. 그러면 제대로 관찰한 것인가? 아니다. 관찰 행위 자체가 그 대상을 교란시켜서 실상과는 다른 것을 관찰하게 된다.

이런 교란을 적게 하려면 아주 미약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도 말고 말을 걸지도 말고 아주 몰래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관찰대상을 교란시키지는 않지만 실상을 알 수는 없다. 관찰을 약하게 하면 실상을 알기 어렵고, 관찰을 강하게 하면 관찰행위 자체가 대상을 교란시켜서 실상을 바꾸어 버린다. 이래저래 그 사람의 실제 상태를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의미는 비슷하다.

나는 이 `진실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한 인간의 생각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한 인간이 내가 미워하는 그 누구이면 좋겠지만, 내가 바로 그 한 인간이라면 어떻겠는가? 아찔한가? 그 아찔함이 나의 죄가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속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 좋을 리는 없다. 애인에게 어떤 깜짝 선물을 하려 계획하고 있는데 그 계획이나 그 의도가 사전에 탄로 나 버리면 어떨까?

진실은 밝혀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아야 더 가치가 있는 것도 있다. 인간의 존엄, 자아, 자존, 자유, 이런 것들은 모두 그 개인만의 고유한 무엇이 있어야 하고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아닌 원자나 전자, 그리고 돌멩이 하나도 존엄하다. 존엄하기 때문에 다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을 때 더 진실답다. 불확정성 원리, 그것은 만물에 쏟아진 축복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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