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당
흑색당
  • 권재술<물리학자·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7.05.1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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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초록, 듣기만 해도 상큼해지는 색이다. 초록은 빨주노초파남보에서 보듯이 태양광 스펙트럼에서 노랑과 파랑 중간 정도의 색이다. 초록은 녹색이라고도 부른다. 둘은 같은 색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초록을 공식 색명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녹색이라는 말은 친환경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녹색 식품, 녹색인증, 녹색연합, 녹색어머니회, 녹색지대, 녹색병원, 녹색기술, 녹색 건축 등. 모든 것에 녹색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좋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에서는 녹색당까지 등장했다.

초록이거나 녹색이거나 모두 식물 잎의 색에서 유래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녹색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식물마다 약간씩 다른 녹색이다. 하지만 통칭하여 녹색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식물은 녹색일까? 식물이 녹색을 좋아해서 녹색으로 보일까? 우리는 사물의 참 모습, 속 모습을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겉모습을 보고 그 내면을 짐작한다. 돈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자라고 생각한다.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속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란 하늘을 보면 하늘은 속속들이 파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녹색 식물을 보면 식물은 녹색을 가장 좋아할 것 같다. 정말 식물은 녹색을 좋아할까?

빨간 사과가 빨간 것은 사과가 빨간색을 좋아해서일까? 사과가 빨간 것은 사과에 비춰진 빛 중에서 파랑, 노랑 등 다른 빛은 다 흡수하고 빨간빛만 반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과가 좋아하는 색은 흡수하는 파란색인가 반사하여 내보내는 빨강색인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버릴 자가 어디 있을까? 사과가 빨간 것은 빨강이 사과에게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부색도 마찬가지다. 흑인의 피부와 백인의 피부 중에서 어느 피부가 빛을 좋아할까? 흑인일까, 백인일까? 흑인의 피부는 어둡고 백인의 피부는 밝으니 당연히 백인의 피부가 빛을 선호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정 반대다.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반면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한다. 다시 말하면 흰색은 모든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색이다. 그렇다면 흑인과 백인 중에서 누가 빛을 더 선호하는 피부를 가지고 있는가?

마찬가지로 식물이 녹색인 건 식물에게 녹색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하여 여러 가지 영양분을 합성한다. 광합성은 말 그대로 빛을 합성한다는 말인데 식물 잎에 있는 초록 색소인 엽록소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작용을 말한다. 이 화학작용에서 광합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빛이 청색 영역과 붉은색 영역이다. 녹색 영역은 상대적으로 광합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그래서 엽록소는 녹색이 광합성에 별로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빛을 내보내고 광합성에 필요한 청색과 붉은색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식물은 녹색을 싫어한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녹색은 좋은 색이고 녹색은 유용한 색이고 녹색이 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녹색은 식물에게 가장 필요 없는 색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광합성은 태양광의 에너지를 식물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태양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은 빛의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모든 빛을 다 광합성 하기 위해서는 모든 빛을 다 흡수해야 한다. 모든 빛을 다 흡수하는 것은 까만색이다. 완전한 광합성을 하는 색소는 까만색일 수밖에 없다. 그런 세상의 식물은 엽록소(葉綠素)가 아니라 엽흑소(葉黑素)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구의 식물이 녹색인 것은 식물의 광합성이 아주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지구의 식물은 진화가 덜 된 상태인지 모른다. 지구보다 더 진화된 그래서 완전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넘쳐나는 세상의 식물은 까만색일지 모른다. 모두 까만색 잎을 가진 그런 세상, 그런 세상에는 흑색당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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