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지나 봄
겨울지나 봄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7.03.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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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김경순

3월, 봄이다.

남녘에는 진즉에 산수유와 매화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분명 봄은 상춘객들의 마음도 달뜨게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아직은 겨울의 바람이 이곳에는 남아 있어서인지 봄꽃 소식이 굼뜨기만 하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집 안마당 화단을 살펴보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곳에는 털복숭이 할미꽃이 꽃봉오리를 샐쭉하니 내밀고 있었다. 추위를 대비해서인지 털옷을 잔뜩 챙겨 입은 할미꽃은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꽤 오래전, 지인과 가까운 산을 오르다 다복하게 피어 있는 할미꽃 더미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하산하던 길에 그 할미꽃 몇 뿌리를 캐어 우리 집 화단에 심어 놓았다.

자라던 환경이 바뀌어 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할미꽃은 줄곧 우리 집 화단 앞자리를 당당하게 지켜 주었다. 어느새 생명의 흔적이라곤 없어 보이던 화단에 봄의 기운이 돌고 있다.

지난겨울, 나무들은 자신의 잎을 모두 떨 군 채 눈보라 치는 칼바람 앞에서 맨몸으로 묵언과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키 작은 초록 생명들 또한 자신의 몸을 바짝 말리고 차가운 땅속에서의 기나긴 칩거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어찌 그들의 시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정중동 동중정(靜中動 動中靜).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 그렇다면 겨울은 정중동(靜中動)이며, 봄은 동중정(動中靜)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죽은 듯이 서 있던 겨울나무들이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이 고요 해 보이지만, 뿌리와 나무줄기에서는 무수한 아니 치열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봄이 되면 나무의 줄기 이곳 저곳에서 돋아나는 여린 새순이 이를 증명 해 준다. 또한 봄이 되어 꽃들이 몽우리 띄우고 쑥쑥 잎을 키우지만 떠들썩한 것은 우리 사람뿐 꽃들은 아무런 미동도 없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 낼 뿐이다.

자연은 지척에서 우리에게 언제나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리가 먼 곳에 있는 그 무엇인 양 신기루를 찾아 헤맨다. `문밖이 세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세상이 두렵기만 하다.

하루가 멀게 들려오는 비상식적인 일들과 경악에 치를 떨게 하는 사건 사고들. 오늘 새벽 드디어 3년 동안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세월호'가 올려졌다. 침몰한 지 1073일 만이다.

정중동 동중정(靜中動 動中靜), 물론 우리의 삶의 태도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요즘의 비상식적인 현상 앞에서 동중동 정중정(動中動 靜中靜)이라 바꿔 생각해 본다.

몸이 움직여야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고요해야 마음도 덩달아 고요해진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다. 부디 `세월호'의 침묵했던 진실이 밝혀지길 기원 해 본다. 그것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몸과 마음의 고요를 찾는 길이리라.

암흑같이 어둡고 춥던 바다 속에서 겨울만을 보냈을 `세월호'에도 봄의 마력이 작용하길 빌어본다. 세상은 지금 겨울지나 봄이 왔음을 알려 주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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