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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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04.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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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어떤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이냐고, 어느 날 제자들이 스승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라고 타고르가 대답했을 때, 한 제자가 다시 물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타고르는 스스로 날마다 다섯 가지 질문을 하면, 자기를 이길 수 있고 인생을 살릴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는군요.

타고르가 말한 다섯 가지 질문은 이렇습니다.

1. 오늘은 어떻게 지냈는가? 2. 오늘은 어디에 갔었는가? 3.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났는가? 4. 오늘은 무엇을 하였는가? 5. 오늘은 무엇을 잊어버렸는가?

다섯 번째 질문에선, 제가 그만 긴 탄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살다 보니, 그예 정신줄까지 놓고 마는 게 아닐까요. 그대여, 오늘이 봄인데도 봄인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요?

오규원의 봄 이란 시를 그대의 뜰로 초대합니다.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든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벼락같은 봄비가 몇 번 내리치고 나면 봄의 얼굴은 금세 해쓱해지고 맙니다. 늘 겪는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이 낯설게 여겨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마음대로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구르고, 뛰어야 할 봄의 자유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봄비 속에 떠난 사람이 봄비 맞으며 돌아왔다는 노래 가사도 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요.

레오 들리브(Leo Delibes)의 오페라 ‘라크메(Lakme)’ 중 1막에 나오는 ‘꽃의 이중창’을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꽃들이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그려 보게 되는군요. 아, 제 몸이 나비처럼 요동치는 느낌이 드는군요. 오규원의 봄과 길 이란 시도 그대의 뜰로 부릅니다.

나비가 동에서 서로 가고 있다/돌이건 꽃이건 집이건/하늘이건 나비가 지나가는 곳에서는/모두 몸이 둘로 갈라진다 갈라졌다가/갈라진 곳을 다시 숨기고 다시/하나가 된다/그러나 공기의 속이 굳었는지/혼자 길을 뚫고 가는 나비의 몸이/울퉁불퉁 심하게 요동친다

제 주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게요. 당분간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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