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신영복
  • 강대헌(에세이스트)
  • 승인 2016.02.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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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에세이스트)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5일 밤 별세했다. 향년 75세.”

한 뉴스 기사에서 한 달 전쯤에 올렸던 고 신영복 교수의 연보(年譜) 첫머리였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온 내력이나 어떤 사실을 연대순으로 간략하게 적은 기록을 연보라고 하지만, 그의 경우는 결코 짧지 않은 내용들이 차곡차곡 연결돼 있더군요.

녹록하지 않은 삶으로 물결이 만 길 높이로 일었던 겁니다.

7320일을 감옥에서 보냈던 것도 그랬지만, 그의 시서화사(詩書畵社)의 발걸음 또한 이 나라의 현대사와 맞물려 쉽사리 지나칠 수 없었지요. 그를 보내는 발인 하루 전, 저는 관해난수(觀海難水) 라는 말을 종이에 쓰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페이스북에 남겼습니다.

“관해난수: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한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뜻의 관어해자난위수(觀於海者難爲水) 라는 말을 네 글자로 줄여 쓴 것입니다. 고맙게도 몇 권의 서화 에세이집을 우리 곁에 남겨두고 떠난 쇠귀 신영복 선생님을 떠올리며, 그분이 생전에 썼던 글귀를 저도 옮겨 봤습니다.”

축구를 즐겨 했던 그가 애창하던 노래가 하나 있더군요. 시냇물이란 동요입니다. 그와 함께 노래를 불러보는 심정으로 가사를 옮겨볼게요.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탁 트인 넓은 세상이 보고 싶을 땐 아무래도 바다로 가야 할 것 같군요.

변화의 시대에 변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뼈대와 뿌리에 대해 강조를 하던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의 여정은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라는 말을 남기기도 한 그는 실천과 현장과 더불어 사는 숲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변방과 소수(minority)에 눈길을 주었고, 살아가는 이유를 깨달음과 공부에 두었던 그는 한때 이런 추억에 잠긴 적도 있었죠.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민영규의 책 예루살렘 입성기에 나오는 구절이 그를 통해 천천히 다가오기도 했던 기억도 마냥 새롭기만 하군요.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指南鐵)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 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벼락같은 말씀보다는 웅숭깊은 화두(話頭)를 던지고는 미소를 지으며 먼저 떠났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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