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키운 정신은 무엇일까(1)
우리나라를 키운 정신은 무엇일까(1)
  • 김영미<수필가·청주시문화해설사>
  • 승인 2015.11.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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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김영미

우리고장은 예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이 자자하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든 것도 바로 선비정신이 아닐까 싶다. 영국에 신사정신이 있다면 일본에는 무사정신이 있고 우리나라는 선비정신을 꼽는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유교문화가 발달한 선비의 나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선비란 무엇일까. 선비란 성품이 올곧은 사람, 사람다운 사람,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람. 곧 자기 이익만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까 선비란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선현들은 머리 공부 뿐만 아니라 마음과 몸 공부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여 가르친 것이다.

청주향교는 지방 유형 문화재 39호로서 고려 성종6년(987년)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향교가 완전 소실되어 광해군 원년(1609년)에 청원군 남일면 기산리로 이전했다가 숙종 9년(1683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겨오게 되었다.

향교는 지방재정에 의해 운영되는 관학기관으로 지금의 국립 중등학교에 해당한다. 또 선현을 기리는 제향기능과 유학을 가르치는 교학기능이 있는 곳이다.

청주 향교는 삼남의 으뜸 향교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이것은 세종 임금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느라 혹사당한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에 오셨다가 통감강목과 통감절요, 통감훈의, 근사록 등 9권의 서책을 하사하셨다. 또 20년 후인 1464년 한글 창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신미대사가 속리산 복천사에 머물고 있을 때 세조 임금께서 법문을 청하러 가시던 중 청주 향교를 방문하셨다. 청주 향교에 들러 문묘에 대뢰(나라 제사에 소를 통째로 제물로 바치던 일)로서 친히 제사를 올림으로써 얻은 명성이 바로 삼남 제일의 으뜸 향교다.

이런 일화가 있다. 신미대사의 초청을 받은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소나무 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 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무사히 통과하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에 대한 충성이 갸륵하다 하여 나무에게 정이품이라는 품계를 하사였다. 정이품송이 지금도 살아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향교에 오면 붉은색의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 내부는 청정한 지역이므로 불미스러운 일이나 잡스러운 것은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로 세운다. 홍살문을 들어서기 전 왼쪽에 하마비가 있다. 大小人員過此者皆下馬(대소인원과차자개하마). 이것은 벼슬이 높거나 낮거나 할 것 없이 여기를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뜻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외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향교의 정문이자 명륜당의 출입문이다. 정면 세칸으로 가운데 문은 선현의 혼령이 드나드는 문으로 사용이 불가하고 일반인들은 오른쪽(동쪽) 문으로 들어가 왼쪽(서쪽) 문으로 나오는 것이 올바르다. 청주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공부하는 공간이 앞에 있고 제사 공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는 대부분 경사지에 건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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