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도 인간이다
어머니도 인간이다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0.28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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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어머니! 오늘도 당신 생각에 목이 멥니다. 잘못한 게 많아서입니다. 죄송한 게 많아서입니다. 후회가 많아서입니다. 어머님만 생각하면 가슴 시리고, 눈가엔 이슬이 내립니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먹다 남은 찬 음식을 먹어도, 볼품없는 싸구려 옷을 입고 있어도,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만 해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도 사람이었습니다. 오욕칠정과 희로애락이 있는,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졸할 수도 있는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여자였습니다. 더 예뻐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명품 가방과 명품 옷도 갖고 싶고, 꽃놀이 단풍놀이도 하고 싶고, 때론 여행도 하며 수다도 떨고 싶은 꿈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한없이 베풀기만 하는 엄마이길 바랬습니다. 아니 한사코 그런 어머니이고자 했습니다. 무시로 어머니를 아프게 했습니다. 고기반찬 안 해준다고 투정부리고, 새 옷 사달라고 새 신 사달라고 앙탈하고, 그것도 모르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엄마 때문에 키가 작다고, 어려운 형편에 왜 자식들은 많이 낳았느냐고 원망도 했습니다. 이처럼 철딱서니 없는 말들이 여린 어머니 가슴에 대못으로 박혔습니다. 정말 그때는 몰랐습니다. 자식들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제 내린 가을비가 찬바람과 추위를 몰고 왔습니다. 한겨울에도 변변한 옷 한 벌 제대로 입지 못하고 사셨던 어머님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어머님 모시고 고향 잉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수안보에 들러 온천욕도 하고, 나물반찬이 근사한 산채정식도 사드리고 응석을 부렸을 겁니다.

살아생전에 그리하지 못한 게 응어리로 남습니다. 어머니 은혜를 노래한 동요 두 곡을 나직이 불러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그렇습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고 깊은 게 어머니 은혜입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어머니 희생과 정성만한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걸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이 바로 이 땅의 어머니들입니다.

그대에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있기에 그대가 존재했습니다. 어머님이 생존해 계신다는 건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저처럼 돌아가신 후에 땅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하시기 바랍니다. 자식 앞엔 한없이 강한 어머니지만 염라대왕이 부르면 언제라도 가야 하는 약한 존재입니다. 마냥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하세요. 반드시 어머니도 인간이고 여자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하십시오.

작은 말 한마디가 어머니에게는 힘이 되고 위안이 됩니다. 지금 어머님께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세요. 떨어져 산다면 수시로 전화하세요. 효란 결코 구시대 유물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서 채워주고, 어머니가 힘들어 하는 것을 찾아서 비워주는 것, 그게 바로 효이고 사랑입니다. 어머니도 자식 사랑받고 싶은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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