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요리사
문학과 요리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6.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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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푸르던 저항의 시절, 계간지 창비(창작과 비평)는 갈증을 숨겨야 하는 내 불온한 바람의 자양분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시식코너는 가난과 배곯음을 갓 넘긴, 그리하여 상아탑이 우골탑으로 전도되던 한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맛의 신천지를 열어 준 경이로운 세계였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그리고 그렇게 갖가지 다양한 음식이 그럴싸한 건물 맨 위층에 한꺼번에 몰려 있다니...

그 시절 창비는 궁색하기 그지없는 청춘의 어설픈 지식을 참 다양한 분야에서 일깨우고 충동질 했다. 한식과 양식, 중식에 일식까지, 마치 음식 백화점 같은 시식코너의 다채로운 상차림처럼 창비에는 시와 소설 등 본격 장르문학과 더불어 철학은 물론 역사학과 사회학 심지어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세트로 모아져 있었다.

창비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도도한 저항의식과 전진을 위한 진보적 깨달음을 비롯해 옮고 그름과, 독재와 민주의 차이 정도를 먼저 알고 있다는 우쭐함 또한 생겨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더 이상 문학이 읽히지 않는 시대. 386세대의 배신과 변절에 민주주의의 순수한 이름이 퇴색되었다는 한숨과 더불어 창비 또한 어느새 문화권력(나는 이를 굳이 문학권력으로 축소시키고 싶지 않다)의 중심에 서서 시대를 왜곡하거나 호령하고 있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시비에는 이런 역사성이 있다. 남다른 진솔함과 솔직하고 정의로운 깨달음을 바탕으로 속절없이 세상과 맞서 왔던 청춘의 피땀을 딛고 일어선 자본과 문화권력의 냄새나는 속살이 있다.

어쩌면 소중히 간직하거나 소장하고 싶다는 순진함에서 충동 구매된 창비 영인본의 시커먼 양장표지와 거기에 짓누르듯 더께 얹힌 먼지와 다름없다.

바야흐로 요리사의 전성시대이다. 종편은 물론이거니와 공중파마저도 돌리는 채널마다 소위 쉐프님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대대로 이어지던 종가집의 손맛이 사라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핵가족 시대 새댁을 향한 교육프로그램 비슷했던 음식 프로그램은 이제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세상을 평정하고 요리사 중심으로 천하통일을 이룰 태세다.

참 기가 막히다.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의 곤궁함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무엇을 어떻게 잘 먹을까에 온 국민의 신경을 빼앗기고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표절이 됐든 쉐프들의 현란한 칼질과 요리신공이 됐든 숨길 수 없는 원본과 레시피에 의해 공유된다는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단순화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러나 조심하라. 거기에는 (표절에 실망한 나머지)소설을 외면하게 만들어, 생각의 원천이 되는 창의력을 말살하게 하는 음모가 있거나, 입맛도 동일하게 만들어 결국 거대 자본에 지배되는 음식 식민지로서의 야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음식은 온고지신이 맞고, 문학은 창의력이 가장 강력한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수백 개의 채널과 무한한 웹이 넘실되는 이미지 조작의 시대에 너무 고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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