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100세 시대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4.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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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최 준 <시인>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낡은 사진첩을 들춰보곤 한다. 

거기에 들어 있는 흑백사진들 속에는 흰 수염과 흰 고무신이 인상적인 증조부의 만년이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과,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가깝고 먼 친척들이 있다. 

1년에 한두 번 가기도 어려운 시골 고향의 지난 시간들로 빼곡한 사진첩에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참 많다. 

사진 한 장에서 친가 외가의 친척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할아버지의 회갑(回甲)잔치 기념사진은 곳간을 배경으로 찍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고향집은 전형적인 관북형 겹집이었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는 물론 외양간과 디딜방앗간까지 모든 게 갖춰진 기와집이었다. 

안마당에 차려진 잔칫상 앞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계시고 그 뒤쪽에는 친척들이 나란히 겹줄을 지어 서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른들 틈새에 반바지를 입고 눈만 빼꼼히 내민 나도 있다. 

할아버지의 회갑 기념사진은 면소재지에 있는 사진관에서 사진사가 출장 촬영을 한 거였다. 할아버지의 회갑연은 집안 잔치가 아닌 마을의 잔치였다. 

평균 수명이 회갑 언저리였던 시절이었으니 건강하게 회갑을 맞은 건 큰 축복이었고 이웃의 축하를 받을 만한 일생이었다. 

5년 전인가. 고희(古稀)를 맞은 큰외삼촌이 연락을 하셨다. 여동생인 두 분 이모가 오빠의 칠순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5남매인 친가와 6남매인 외가의 맏이어서 친가와 외가의 구분없이 자란 터라 기쁜 마음으로 춘천에 갔지만 큰외삼촌의 칠순 잔치는 외가의 형제들만 모인 조촐한 점심식사 한 끼였다. 일흔을 훌쩍 넘긴 큰외삼촌은 여전히 건강하시고 건재하시다. 

당파싸움으로 일관하다가 종국에는 망국과 식민지의 비운을 맞은 조선시대 임금님들의 평균 수명이 50세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건 임금님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때는 나라 백성들의 수명이 모두 그랬다. 한 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이제는 100세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고령화는 노인 인구의 증가를 뜻하는 말일 텐데 알고 보면 우리는 그분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들 기성세대는 그분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분들의 외로움과 불행한 만년에 대해 온전한 갚음을 하고 있지 못하다. 

알고 보면 행복과 불행도 모두 대물림이다. 어느 날 갑자기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나고 죽는 것이 숙명이라면 왕후장상은 물론 어느 누구도 그 숙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와 둘이 고작인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기 전에 우리 사회를 물려주신 어른들의 삶부터 돌보아 드리자. 아직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우리도 외롭고 쓸쓸한 만년을 맞게 된다. 

오래 사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이 되는 시대를 우리 세대가 만들어야 한다. 미래는 반드시 현재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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