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과 소명에 대하여
사명과 소명에 대하여
  •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 승인 2014.11.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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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사명이라는 말과 소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가슴이 뛴다. 주저하고 망설이던 전의가 되살아나기도 하고 더러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부분 마음이 숙연해지는 마력이 있다. 평소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이는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는 개념이 없거나 고개를 숙일 것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나 두 말에는 분명 차이점이 있다. 사명(使命)의 사전적 풀이는 맡겨진 임무 또는 사신이나 사절이 받은 명령이다. 유의어로 명령, 임무, 책임 등이 있고 자주 쓰이는 말로는 사명감과 역사적 사명 등이 있다. 소명(召命)의 사전적 풀이는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이다. 부름 또는 부름 받음으로 순화하여 쓰기도 한다. 자주 쓰이는 말로 소명감과 시대적 소명 등이 있다.

흔히들 사람의 크기를 잴 때 사명감과 소명의식의 깊이와 크기, 그리고 인류와 지역사회에 기여도를 본다. 사명과 소명의 본질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치부와 명예를 위해 목숨 거는 행위를 사명 또는 사명감이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무엇이 되고자 전력투구하는 행위 역시 소명 또는 소명의식이라 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명감과 시대적 소명을 가진 자를 선구자라 부르고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역사에 남는 큰일을 했거나 시대적 소명을 완수한 인물을 위인이라 부른다.

무릇 일을 함에 있어서 사명감의 유무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한 철인이 성당을 짓고 있는 두 명의 벽돌공에게 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은 ‘보시다시피 벽돌을 쌓고 있소’ 라고 답했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실 거룩한 성전을 짓고 있소’ 라고 답했다. 두 사람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나 일하는 자세가 달랐다. 누가 성당에 벽돌을 더 튼튼하고 아름답게 붙일지는 명약관화하다.

비전 없이 적당히 일하는 노동자에 비해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노동자는 작업 품질뿐만 아니라 자존감과 미래 모습 또한 다름을 알 수 있다. 거룩한 성전을 짓는 노동자에게 큰일을 맡김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 그의 보직은 선발투수다. 그러므로 그에게 부여된 사명은 5~6회까지 막아주는데 있다. 승리요건을 갖추고 내려오면 더할 나위 없다.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상대 타자에 따라 볼 배합하고 역투한다.

그가 만일 세월호 참사로 실의에 빠진 고국 국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승리를 따냈고 승리의 기쁨을 고국에 바쳤다면 사명을 넘어 소명에 부응한 선수라 할 수 있다.

무릇 사회지도층과 국가대표선수들은 이런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나라와 지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제 몸을 초개처럼 던지는 지도자와 국가의 명예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투혼을 발휘하는 선수가 진정한 지도자요, 국가대표 선수다.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인들, 멸사봉공하는 공직자들, 목숨 바쳐 나라 지키는 군인들, 사도정신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은 사명과 소명에 충실한 이 땅의 보배들이다.

사람들은 부름받기를 원한다. 신앙인들은 절대자로부터, 정치인과 관료들은 대통령에게, 기업인이나 조직원들은 인사권자에게, 시공자는 발주자에게, 연모하는 이는 사랑하는 이에게 부름 받고자 한다.

그대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사명과 소명을 갖고 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녕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빛나는 청춘이자, 시대의 주인공이다.

이 땅에 부름 받은 그대여! 오늘도 사명과 소명이 그대를 부른다.

/편집위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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