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한가위를 보내며
갑오년 한가위를 보내며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09.10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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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한가위 보름달은 보셨나요?

세월호 침몰과 군부대 참사, 정치권의 비리와 이전투구가 원망스러워 아예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구요? 그래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세월을 비켜갈 수 없잖아요? 세상 돌아가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한탄만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갑오년 한가위 보름달은 이런 세상인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난히도 크고 휘영청 밝더이다. 유년시절처럼 내게 소원이 있으면 빌어보라 속삭이면서.

그래서 이순의 나이에 유년의 그 마음 그 자세로 달님에게 희원 했더랍니다.

먼저 베풂과 나눔에 인색했던 이기적인 지난 삶을 어여삐 봐달라고 용서를 청했구요, 오지랖 넓게 대한민국의 평화와 융성도 빌었구요, 가족의 건강과 화목도 빌었답니다.

무언가 소망하고 비는 건 아름답고 좋은 거죠. 그가 사형수든 사기꾼이든 배신자든 신분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입니다.

거기에는 뉘우침의 진정성이 있고, 소망의 선함과 간절함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갑오년도 이제 100여 일 남았네요. 갑오년 청마의 해가 결코 순탄한 해가 아닐 거라는 속설을 실증이라도 하듯 그동안 예기치 못했던 엄청난 재난과 참화로 얼룩졌지요.

온 국민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상주가 되었던 세월호 침몰사건!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어린 학생들과 승객들은 탈출 시도조차 못한 채 수장되고 있는데, 배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선장과 선원들은 줄행랑치듯 탈출하고, 팽목항에서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모습들이 온 국민들 뇌리에 파편처럼 깊게 박혔습니다.

그리고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우왕좌왕한 해경과 대한민국정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며 개탄하고 치를 떨었습니다.

어느새 세월호가 침몰한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좌우 진영이 타협하지 못하고 반목과 대립 중에 있어, 국력은 소진되고 민생은 활력을 잃고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고단하고 피곤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윤일병 총기난사사건을 비롯한 병영 내 가혹행위로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와 친지들의 마음이 편할 날이 없구요.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수사에서 보여준 검경의 한심한 작태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와, 서울 송파구 세 모녀 동반자살 같은 복지사각지대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작동하고 있어,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고 울화통이 터집니다.

거기다가 남북화해의 전기로 활용할 수 있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목전에 두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당국의 미숙한 대북외교에도 실망이 큽니다. 그래서 갑오년 한가위를 맞고 보내는 선남선녀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차례상에 송편과 햇과일은 가득 올렸는데도 왠지 조상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 같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얼굴에도 웃음기가 줄어든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갑오년 추석명절이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땅에 남기고 간 사랑과 평화의 온기가 식지 않아 위안이 됩니다.

극한 대립과 불신,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는 분단의 땅 대한민국에서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십자가의 길에 희망의 꽃이 싹트고 있습니다. 소외받고 힘없는 자의 편에 서라, 평화는 정의의 산물이다, 성직자와 정치지도자는 엄한 자기절제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은 분명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그리되기를 소망합니다.

올해도 더디고 힘든 귀성길 마다않고 부모님과 고향 찾은 그대는 복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생활전선으로 복귀하는 그대에게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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