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난 몸집 '지역 정치력 구축' 최대 과제 급부상
불어난 몸집 '지역 정치력 구축' 최대 과제 급부상
  • 엄경철 기자
  • 승인 2014.08.13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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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 정치력을 살실했나
스타 정치인·충청권의 근성있는 집단 표심 필요

독자적 권력 창출은 아직… 세력규합 정치력 요구

이시종 충북지사가 외치는 ‘영충호시대’는 다분히 정치적 발상의 산물이다.

지난 2013년 5월 31일 충청인구가 호남인구를 추월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의 영호남 패권구도에서 벗어나 이젠 충청도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의미의 이 말은, 그 함의(含意)가 주는 상징성 만으로도 대중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충청도 이젠 조연을 넘어 주역이 되겠다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20세기 정치를 극복할 힘은 충청도에 있다”고 일갈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불신을 받는 기성정치에 대한 대안세력은 앞으로 충청인이 만들어갈 ‘충청도 정치력’이 될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굳이 본인이 현재 대권 반열에 올려지는 것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이 말 역시 극도로 정제된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국내 정치현상에서 충청도를 의식하는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당장 지난 6·4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결과를 놓고서도 전국의 언론들이 충청표심에 대한 갖가지 보도를 쏟아냈다. 6월 지방선거에선 야당 싹쓸이, 7월 보궐선거에선 여당 싹쓸이로 나타난 현실이 외지인들에게도 결코 예사롭지 않게 다가 온 것이다. 이같은 여론에 꼭 수식어 처럼 따라붙는 말이 하나 있었다. 세종시를 계기로 충청도의 정치적 성향이 이젠 분명하게 자기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덩치 커진 충청도, 정치력은 되레 뒷걸음질

이러한 전후관계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질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세종 특별자치시가 하루가 다르게 뻗어가고 충남이 청사의 내포이전으로 외연을 넓혔는가 하면, 충북에선 오창과 오송 신도시로 상징되는 대규모 개발, 여기에다 청주 청원통합으로 또 하나의 대도시가 탄생한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할 정치력은 과연 있느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충청도의 정치는 죽었다’는 평가가 대세다. 인구가 호남을 추월할 만큼 덩치는 커졌지만 막상 이를 견인할 만한 정치력 즉 ‘정치의 힘’은 오히려 더 위축됐다는 것이다.

이것의 실증적 사례들이 최근 지방언론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 지역현안에 대한 일사분란한 목소리가 사라진지 오래이고 국회의원들의 팀워크 자체가 실종됐다고 아우성이다.

지자체들의 정부예산 확보 역시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의 역할부재로 어려움이 많다고들 호소한다. 정치인 개개인의 출세는 있어도 이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내야 할 충청도라는 지역세는 기를 못편다는 볼멘 소리마저 터져 나온다.

◇ 캐스팅 보트는 결국 승자에게 이용당한 꼴

JP의 몰락과 함께 충청의 정치도 실종됐다는 말은 그만한 일리가 있다. 비록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기생(寄生)의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JP는 충청도를 등에 업고 역대 정권에서 나름의 자기목소리를 내면서 국내 정치의 ‘키’를 움직였다.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은 2인자인 JP와 육영수 여사의 고향 충청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노태우 정권과 DJP 연합으로 만들어진 김대중 정권은 결국 JP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권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각각 세종시에 대한 지지로 얻은 충청의 거국적인 표심이 없었다면 노무현, 박근혜 정권은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래서 붙은 수식어가 영호남은 죽기살기로 싸울 때 충청권은 결정권을 쥐고 그 싸움을 즐겼다는 것이고, 역대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는 덕담 아닌 덕담이었다. 하지만 이를 냉정하게 평가하면 그동안 충청 표심은 늘 승자의 편에 섰고 이들 승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청은 실컷 이용만 하고 팽(烹)시켜도 되는 만만한 대상이 됐다.

바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충청도의 정치력’이 최근 인구의 호남추월, 그리고 중부권 시대로 상징되는 지역의 대대적인 발전상에 빗대어 회자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연이어 빚어진 충청 연고의 총리무산을 놓고도 “이젠 총리가 아니라 아예 대통령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어차피 ‘충청도의 정치’는 이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시점이 됐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갈증이 지역민들 사이에서 점차 커지면서 그 요구 또한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다. 더 이상 국가권력의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당장의 현실적 묘책은 아니더라도 장기적 안목의 준비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 “지역 맹주(盟主)의 정치시대는 지났다”

“과거와 같은 지역패권주의나 특정 인물에 의한 지역 맹주의 시대는 분명이 지나갔다. 충청도 정치력에 대한 논란도 이런 구도에서 접근된다면 문제가 있다. 호남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사례가 달라지는 정치문화를 잘 대변한다. 그렇더라도 충청도 정치가 죽었다는 말엔 일부 동의한다. 여야 당적의 국회의원들이 혼재되다보니 의원간 팀워크가 예전같지 않다. 솔직히 요즘은 무슨 정책 등 거대담론보다는 지역구별 단발성, 단편적 민원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나 스스로도 가끔은 쪼잔()하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지역 출신 정치인이 고해성사를 한다면서 한 말이다.

그는 “중부권 시대라는 국가적 추세에 맞춰 충청도의 발전상에 걸맞는 정치력을 하루속히 갖춰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영호남에 버금가는 정치력을 확보하려면 정권이나 인물, 사회적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시너지효과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특정 분야만 해결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충청도의 정치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막상 위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하찮은 정치현상도 숱한 시일과 시행착오를 거쳐 이루어지고 또 그렇게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어느날 갑자기 출중한 인물이 나타난다고 해서 곧바로 충청도 정치력이 대세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의 부침이 좋은 예다”고 말했다.

◇ 국가 의제의 빈약함이 지방정치력 약화시켜

국회의 한 정책보좌관은 좀 더 현실적인 고민을 토로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충청을 대표할 인물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인적 인프라가 여전히 엉성하다. 근자에 충청도 정치력이 쇠잔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역을 위해 정치인들이 한 목소리를 낼만한 국가적 의제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국가균형발전처럼 정권차원의 분명한 방향설정이 된다면 지역 국회의원들도 일관된 신념으로 집단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MB정권 이후 이런 잣대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임기응변의 정치만 남발되다보니 지역 국회의원들은 솔직히 활동하는 데 감잡기조차 힘들다.”

그는 충청도 정치의 대망을 향한 3가지 요건을 이렇게 제시했다.

앞으로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스타 정치인의 등장과, 정권을 비롯한 주변 여건의 호의적 분위기, 그리고 지역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한 충청도 유권자들의 냉엄한 심판 등이다. 상황에 따라선 충청도 전체의 근성있는 ‘집단 표심’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직은 자력(自力)에 의한 충청도의 권력창출은 어렵다고 진단하며 동조 세력을 끌어들여 이런 여건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단정한다.

바로 이것을 책임질 정치적 스타 출현을 지금 충청인들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게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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