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호암지에서 만난 천국이미지
충주 호암지에서 만난 천국이미지
  •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 승인 2012.05.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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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왼편 발아래는 옥잠화가 살포시 주저 않은 오솔길이다. 오른편을 돌아보니, 꽃대를 세우기 시작한 참나리들이 키재기를 하듯 까치발을 돋우고 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가려니 둥글레가 지천이다. 호숫가엔 지난해를 살았던 황토 빛 부들이 갈대들과 다정하게 스러지고 있다.

그 스러지는 사이로 진초록 부들과 갈대들이 허공을 더듬어 쑤욱쑤욱 자라고 있다. 야생화 단지 곁, 호숫가 둔덕아래엔 샛노랗거나 청보라빛 붓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바람이라도 타는지 물에 비추인 제 품으로 기어드는 붕어들을 들여다보며 간지럽게 몸을 흔든다.

고개를 드니 엊그제 꽃잎 떨어진 벚나무가 가지마다 푸른열매를 매달고 그네를 뛴다. 저 버찌들이 익어서 떨어지면 산책하는 발에 밟혀 길은 잠시 검붉은 옷을 입을 것이다. 호수 가운데는 힘차게 치솟는 분수물결에 하늘은 더욱 파랗게, 청청한 기상으로, 살찐 구름물고기 몇 마리를 유영시키고 있다. 초록잎사귀마다 손을 흔드는 바람은 얼마나 싱그러운지, 그 잎들이 흔드는 소리는 얼마나 감미로운 지, 호암지는 사람을 부르며 온 몸으로 착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호암지의 산책로 2.7km 속에서 뭇 생명들이 기쁨을 다투어 시간을 즐기고 있다. 물가의 버드나무 가지마다 날아들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부터, 숲의 고목 사이를 오가는 커다란 새들, 목탁소리처럼 딱-따구르르 딱- 따구르르 산책 나온 사람들 발걸음을 붙들어 잠시라도 청량한 제 소리를 들어보라는 딱따구리, 그 소리에 붙들린 노인들도, 연인들도, 아이들도 마치 뭔가를 깨닫기라도 하듯 올려다보면서 나뭇잎처럼 끄덕인다.

멀리 일상을 달리는 차량의 이마에 부딪쳐 돌아오는 눈부신 햇살, 그 눈부신 햇살 사이로 한 무리 어린이집 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꽃잎 같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서 나란히 나란히 꽃 덩어리가 되어서 까르르 까르르 새들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생태 전시관을 돌아 나온 또 한 무리의 꿈나무 어린이들이 나비를 보고 벌을 보고 꽃향기를 맡으며 연신 선생님을 향하여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내는 노래를 한다. "아이고 고것들 참-- " 산책 나온 어르신들은 여기 저기 쏟아진 아가들이 모두 당신 손주라도 되는 냥 마냥 서서 온 얼굴에 감탄사를 흘리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산책하였더라도 이미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어떤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킨 것, 그것은 호암공원에서 느꼈을 자연과 자유와 인간의 어울림이 주는 숙명적 깨달음. 호암공원은 80여 년 전 삽과 지게나 우마차를 이용하여 순수한 열정으로 조성된 호암연못을 품고 있다.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공원이 되어 시민들의 즐겨 찾는 행복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생태 전시관을 둘러본 아이들은 물가에서 사라진 동물들이나 물 위에서 사라진 동물들에 대하여, 멸종 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 황금박쥐가 사는 충주에 대하여, 한 번도 접하지 않는 이들보다는 남달리 생각하고 기억할 것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찾아갔었다. 아름다운 스토리, 아름다운 배경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내가 만남 것은 평범한 언덕과 뾰족한 첨탑이 있는 건물과 결코 맑다고 말할 수 없는 평범한 호수였다. 빼어난 자연과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정경으로 유명한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가 주는 힘이었을 뿐.

오늘날 충주의 호암공원이 짤츠감머굿 보다 부족할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천국이미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눈부신 빛이라면 빛은 24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따라서 천국은 참신하지도 특별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채, 천국을 누리고 못 누리고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일, 햇빛을 쬐는 것은 희망을 수혈 받는 일, 꼭 호암지가 아니라도 좋다. 일상이 지칠 때면 누구나 공평한 빛으로 걸어 나와 생각의 전이를 주는 천국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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