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갤러리 카페를 열고
21세기 갤러리 카페를 열고
  •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 승인 2012.03.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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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대표·시인>

2갤러리를 오픈한지 어느덧 2년이 됩니다. 오픈을 하기로 작정하고 주변에 자문을 구하려니 "인구 겨우 20만 밖에 안되는 소도시에서 갤러리 카페가 되겠냐"고 대부분이 말렸습니다.

나이 40대 후반이 되면서 다 자란 아이들이 대학으로 군대로 가고 갑자기 존재감을 잃어버린 저의 일상은 작은 방황이었기에 종종 혼자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곤 하였습니다. 가끔은 봉사 가서 밥을 짓기도 하고, 노인들 목욕을 시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박물관을 둘러보고 미술관도 가고 연극이나 영화도 보고 흔들리는 존재감을 찾아서 길 위에 감성의 징검돌을 놓았습니다.

대전의 '오 월드' 갔을 땐 동물들과 아이들 속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분수를 보면서 생생하게 살고 싶은 충동으로 온 몸이 떨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낯선 길가에서 푸성귀를 내놓고 앉아있던 할머니와 어둡도록 한나절을 주고 받았던 대화 속에선 힘겨운 노인의 삶이 요양원에 묶인 노년보다 '일 때문에'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인사동의 어느 갤러리에선 80의 노년에도 불구하고 혈기 왕성한 젊음 못지않은 큐레이터 겸 관장을 만난 행운은 필연적 소망이 불러낸 결과였고, 돈을 떠나서 하고픈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 갤러리를 설계하고 실천에 옮긴 일은 나름 오랜 숙성을 거친 후의 결과였습니다.

일반인들에게 갤러리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로 알고 있으나 갤러리는 원래 르네상스 시대의 저택이나 왕궁에서 좁고 긴 방 모양이었습니다. 주로 휴게실이나 소장품 전시 공간으로 쓰였는데 귀족들에게 이곳은 귀한 조각품이나 미술품들로 치장하여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공간이었으며 더 나아가 접대와 사교의 공간이었답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에는 이와 같은 장소를 롱 갤러리라 불렀으니 우리식의 표현인 화랑(�/�)이나 미술관을 뜻하는 '갤러리'의 현대적 용어는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페란 불어로 커피란 말이니 카페는 '커피 만드는 집'입니다. 카페는 17세기 커피문화와 함께 발전해 왔으며 카페의 단골은 작가 화가 예술인 등 자유인이 단골이었습니다. 이렇듯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는 이런 저런 토론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으니 예술의 도시 파리는 한때 카페의 도시였으며 역사와 문화의 산실로 프랑스 대혁명이 계획된 곳도 바로 카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역설한 계몽가 볼테르와 작가 디드로도 카페를 찬양했음은 당시로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갤러리가 중세 귀족의 영화와 부귀의 상징으로 사치성을 충족시키며 미술과 건축의 역사에 기여해 왔다면 카페는 개인적인 집필과 토론과 오락의 장소로서 문학과 음악에 기여하며 발전해 왔다고 보면 맞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인식으로 갤러리와 카페가 함께하는 공간이란 것은 고품격 생활문화의 시대를 반영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이즈음 21세기 대한민국에선 '혀의 감각을 일깨우고 두뇌를 날카롭게 해주는' 커피가 '카페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여 배가 고픈 것 보다는 마음이 고픈 이들이 카페마다 넘치고 있습니다.

벌써 2년 전. 조촐한 '갤러리 카페 개관식'에서 저는 "이 장소가 한달에 한번은 예술품 구경도 하고, 차도 마시는 문화인의 공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작품을 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머리를 식히며 한 잔의 차를 나누며 작품을 논하는 공간. 바쁘게 뛰어 다니던 직장인이 하루쯤은 여유를 갖고 새로운 영역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며 다양한 마음들이 이곳에서 소통하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곳에서 지치지 않고 노년까지 행복하길 소망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몇몇의 단골이 생긴 '갤러리 카페'에서 정신없이 잰걸음으로 종종거리는, 저 행복한 사람 맞는지 아직은 확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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