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희망입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2025-02-06     이준연 요한사도 신부(청주성모병원 병원장)

병원을 경영하는 처지에서 최근의 탄핵 정국과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의료상황은 마치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불안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고, 새벽이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병원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지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길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던 작은 생명의 가치마저도 소중하게 여기라고 하십니다. 고통받는 사람의 참된 이웃이 되는 것을 사명의 차원에서 당부하십니다. 

강도를 당해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환자를 어떤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지만, 오직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걸음을 멈추고 치료하고 돌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첫째로, 환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윤리적 민감성이었고, 둘째는 환자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고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이었습니다. 특히 공감(compassion)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처럼 함께 느끼고, 아파하며,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더 나아가 타인을 돕고 싶어 하는 행동에 대한 동기를 의미하여 반드시 고통당하는 타인을 위한 행위를 수반합니다. 그래서 공감 능력은 환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인격적으로 배려하여 진료와 돌봄에서 항상 친절과 미소로 응대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일입니다. 생명은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 미래의 계획, 소중히 여기는 가치, 사랑과 평화의 토대가 됩니다. 즉 생명은 이 세상의 모든 가치가 의미 있게 실현되기 위한 ‘근본 가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살아있음의 의미를 전적으로 ‘효율성’과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변에 무엇인가 유익한 역할을 하거나 비용보다 이득을 많이 낼 수 있을 때야 살아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삶의 의미와 생명의 의미도 감소한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건강을 잃어버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될 때, 삶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효율성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으며,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 병원에서 이번에 시작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는 이를 실천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의미가 있기에 말기 환자가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소명에 온전히 응답하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할 것입니다.

병원은 ‘생명이 희망입니다’라는 사명 의식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환자에 대한 진료와 돌봄을 성실히 실천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돌보며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문화를 실천하여, 이러한 돌봄 문화가 지역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