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에서 겸손으로
심리학으로 본 세상만사
1980년대 미국에서는 사회심리학자들이 ‘자존감(self esteem)’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990년대에는 자존감이 개인 및 사회문제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자존감 향상을 위한 정책과 지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초반부터 자존감이 학계와 학교 등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했다.
우리는 20년 이상 자존감을 높이려 노력했고 높여 왔지만 여전히 자아를 보호하기에 급급하며 불안과 불만족,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불안정한 관계를 맺어가면 살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지금 우리나라 학교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아슬아슬하다’라는 용어를 쓰고 싶다. 누군가는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사회와 학교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이제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할 때이며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 자존감 과잉과 그 대안
나르시시즘 전문가인 트웽이와 캠벨은 미국이 자존감 과잉을 넘어 나르시시즘(narcissism) 전염병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과거 어느 세대보다 자신에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자기과시 성향의 증가는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 및 관심의 감소를 초래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일단의 사회심리학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나 학교의 문제는 수년 동안 과장된 자아에 초점을 맞춘 결과, 자존감의 역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단절된 채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며, 관계에 마찰이 생기고, 갈등이 끊이지 않으며, 사람 사이의 균열이 그 어느 때보다 깊어져 좀처럼 메우지 못할 지경이다.
자신에게는 타인이 관용 해주기를 바라고 세상은 평등해야 한다면서 자신만은 누구보다도 특별해야 한다는 나르시시적 행동이 일반화 된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회심리학자 대릴 반 통게렌(D.V, Tongeren)은 20년간 ‘겸손(humility)’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겸손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인기 없는 분야로 흔히들 종교에서 다루어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통게렌은 심리학자로서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자존감 과잉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 대안으로 ‘겸손’을 제시했다.
통게렌은 그의 연구 보고서인 ‘겸손의 힘(2024)’에서 자존감 운동이 도를 넘는 사회에서 우리의 가치를 재검토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겸손이야말로 육체·정신적 건강, 인간관계 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며, 나와 우리를 성장과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 태도이자 가치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 시대에 만연한 분열과 비교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또한 겸손이라고 한다.
# 뭔가를 해야하는데
이제 뭔가를 해야 한다. 학생들을 제대로 훈육할 수 없다. 학생은 자기의 욕구대로 행동해도 크게 지장 받지 않고 학교생활을 한다.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기보다 불만이 더 많으며 스트레스를 학교에 투사한다.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지쳐있고 두려워하며 맡겨진 수업만 마치면 더 이상 학교에 머무는 것을 힘겨워 한다. 도시 초등학교 교사들의 조퇴 현황은 이를 증명해 준다. 교장·교감은 각종 규제로 교직원에게 뭔가를 요구할 엄두를 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학생, 학부모, 교사, 교장(감) 등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으며 힘들다고들 한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고, 원인과 결과 간에는 분명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다. 그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면 뭔가 새로운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그 새로운 연결고리가 ‘겸손’이 될 수 있겠다. 이제 학교는 뭔가를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