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도심 지하에서 발견되는 서원소경의 흔적들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2024-11-10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1팀장

청주는 현재 구도심과 신도심에 대한 개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진행되는 대규모의 매장유산 조사를 통해 고대 도시의 구획 등을 알 수 있는 자료 등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과거의 도시 경관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현대 지표상의 경관에서 과거 경관의 흔적을 찾는 방법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복원하는 방법, 그리고 고지도나 고문헌 등에서 해당 시기의 경관을 간접적으로 복원하는 방법 등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이전의 서원소경에 대한 연구는 문헌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고고학적인 발굴조사가 도심지 연구의 기초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외에 일제강점기 지도와 조선시대 발간된 지도를 검토해 이를 고고학적 조사 결과와 연계해 도시의 입지 및 주고의 특성을 유추하고 있다.

청주지역의 고대 도시인 서원소경은 과거 백제의 영토였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 이후 685년(신문왕 5)에서 서원소경을 설치해 신라의 지방 행정단위로 편제하였고, 757년 (경덕왕 16)에 중국식으로 개명하며, 서원경이 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는 청주로 명칭되었다.

서원소경의 중심지는 무심천 기준 우측에 위치하고 우암산과 상당산 등 여러 산지가 위치하고 있어 지방 도시로서 좋은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무심천 양안으로는 양질의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도심지를 동쪽으로 인접해 우암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이 조사되어 이곳에 인간이 살기 좋은 입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청주지역이 백제의 고지인 충남북부와 경기도 남부지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입지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아 신라가 청주를 소경으로 편제해 지방통제의 거점으로 삼았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원소경은 비교적 타 지방 도시보다 일찍부터 논의되어 연구성과가 축적되었다. 과거의 연구는 문헌사의 비중이 컸던 방면 최근 들어서는 고고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서원서경의 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청주시역이 고대에는 무심천의 서안으로는 원삼국~삼국시대 유적인 송절동 유적, 봉명동유적, 신봉동 유적 등 대규모 취락․매장 유적이 확인되어 3세기~5세기대 까지 무심천 서안에 대규모 집단의 중심 취락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청주읍성이 위치한 무심천 동안 지역은 통일 신라시대부터 서원소경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반복된 개발사업으로 인해 유구가 파괴된 곳이 많고, 과거 조선시대의 기사에서도 대규모 홍수 피해가 기록되어 있어 유적이 많이 훼손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도심지역에서 재개발사업 등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매장유산 조사를 통해 나말려초기의 건물지나 건물지 관련 석렬시설 담장유구 등 다수 확인되고 있으나 잔존상태가 불량해 정확한 성격을 밝히기 어렵다.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구들이 잔존상태는 불량하나 통일신라 시기의 유구가 고려시대의 유구와 동일한 공간에서 중복된 양상을 주로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의 도시구획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러한 서원소경의 도시구획은 현재 조사된 영동유적, 북문로 hutis 아파트 조성부지 내 유적, 분문로 2가 114-14번지 유적, 북문로 2가 78-10번지 유적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 제작된 청주시가도와 연결해서 보면 서원소경의 중심구역은 청주읍성이 위치한 곳에서 북쪽으로 더 확장되었던 구조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청주 도심과 무심천을 전부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우암산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도시 중심 구역을 바라볼 수 있는 요충지에 성이 설치된 것이다.

앞서 살펴본 소경은 신라 왕경의 작은 축소판이면서 지방사회의 문화․경제의 중심지이다. 소경의 설치 목적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방 도시의 통치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서원경의 도시구획은 청주지역 현재의 모습에 반영되어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도심지에 대한 재개발로 인해 조사되고 있는 고고학적 발견으로도 뒷받침하고 있다.

통일신라~고려시대 유적은 그동안 주로 무심천 동안의 서원소경 추정지 주변으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무심천 동안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진행되고 있는 무심천 서안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그 범위를 확대해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무심천 서안에서 서원소경의 중심지가 위치한 무심천 동안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유적(생산관련 시설 등)이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매장유산 조사가 완료된다면 조선시대 이전의 도시 구조를 밝히는데 주요 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