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한강의 `맞섬'

충청논단

2024-10-13     권혁두 국장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우리 문학계의 오랜 갈망을 실현하며 한국 문화사에 거대한 획을 그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 여성 작가라는 기록도 세웠다. 유력 후보 물망에는 오르지 않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외신은 물론 국내 언론도 `놀라운 일'이라고 보도한 이유이다. 하지만 지구촌 어디에서도 그의 수상 자격에 토를 다는 언론은 보이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세계적 거장 무라키미 하루키의 수상을 고대해온 일본서도 이견은 제기되지 않는다. 아사히 신문은 호외를 내 한강의 수상을 알렸다.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으며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각종 해외 문학상을 석권하며 역량을 인정받고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 했다.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 유럽의 유력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무려 29개 언어로 번역돼 총 72종이 출간됐다.

그가 해외 문단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 국내에서 그의 작품들은 낡아빠진 사상의 통념에 갇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는 그의 이름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 `소년이 온다'는 정부가 보급을 지원하는 우수도서 심사에서 제외됐다. 사상적 편향 등을 사유로 들었다고 한다. 작가의 해외 도서전 참가에도 제동을 걸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채식주의자'에 성교육에 부적격하다는 딱지를 붙여 학교 도서관에서의 퇴출을 유도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보수단체 주장에 박자를 맞춘 것이다.

미래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이 이념적 잣대에 의해 정부의 우수도서 심사 목록에 오르지도 못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쫓겨나는, 군부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한강의 작품을 번역한 미국 작가 페이지 모리스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강을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작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떨쳐낸 인물'로 평가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

하지만 노벨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맞섬'은 계속돼야 할 것 같다. 왜곡과 폄훼로 아픈 역사를 헤집는 사람들이 득세해 핏대를 세우는 전근대적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도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은 “5·18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했다. 유력 보수 일간지에 고정 기고를 하는 한 작가는 페이스북에 한강의 작품을 거론하며 “수상 작가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라고 맹비난 했다. 이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국의 역사를 뭣도 모르고, 그저 출판사 로비에 놀아났다”며 스웨덴 한림원까지 걸고 넘어갔다.

노벨문학상이 책을 읽지않는 나라에 돌아갔다는 불편한 진실도 마주하게 됐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서점에서 유례없는 `오픈런'과 품절 현상이 벌어지고 출판계도 가뭄 끝에 단비를 맞고 있지만, 우리 국민의 독서율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성인 10명 중 6명 가까이가 1년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19세 이상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전자책·오디오북 포함 한권이라도 독파한 비율)이 43%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증 바닥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정부는 책 읽지않는 풍토에 기이하게 대응하고 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문화 증진사업 예산 59억8500만원을 한푼도 남기지않고 전액 삭감했다. 영유아들에게 책을 보급하는 `북스타트', 이동식 도서관인 `책 체험버스' 운영, 독서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하는 예산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전해지자 태도가 돌변했다. 문체부는 삭감했던 예산을 내년에 모두 살리겠다고 했다. 작가들의 집필공간 지원사업과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도 확대한다고 했다. 국회에서도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출판물 제작에 세제혜택을 주자는 법안 발의에 나섰다. 깜짝쇼에 그치는 건 아닐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