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의 삶
시론
어느 날 한 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와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으신 채, 고요하게 침묵에 들어 사람이 내뱉는 욕설을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그 사람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욕설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멀쑥해진 채 돌아갔다. 이 교도는 다음 날에도 부처님을 찾아와 욕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에 온 손님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줬는데 그 손님이 차려진 음식들을 하나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들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는가?”
외도가 대답했다. “손님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을 차린 집 주인의 차지가 되겠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그대가 차려주는 음식(온갖 욕설)에 입을 대지 않겠네.”
그 누군가가 욕을 한다고 해도, 욕하는 자에게 흔들리며 마음의 중심을 잃고, 탁한 생각과 억울한 감정의 노예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 없음'의 텅 빈 무심의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욕을 하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냉정하게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욕하는 자만 있을 뿐, 욕을 먹는 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0점 조정된 저울이 무게를 재듯,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는 지공무사한 나 없음의 마음으로 상대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그 의도 및 속 내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그뿐이다.
상대의 주장을 차분하게 듣고 난 후, 상대방의 지적이 옳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채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주장을 펼친다고 판단되면 상대의 망상과 망언을 일도양단함으로써 파사현정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의 주장이 엉터리일지라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공격성 발언을 하지 않고, 넓고 따듯한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상대가 자신의 편견을 알게 될 때까지 차분하고 여유롭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따듯한 마음으로 주변의 잘못을 포용하며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밝히는 빛의 역할과 함께 상대방이 더 이상의 그릇된 억지 주장을 하며, 어둠의 구덩이로 추락하며 부패하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소금의 역할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큰 맥락에서는 빛의 역할과 소금의 역할이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신만의 만족과 이득이 아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다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처한 상황에 따라, 빛의 역할을 하는 당근도 되고, 소금의 역할도 하는 채찍도 되는 것이 바로 군자불기(君子不器)다.
언제 어디서나 늘 항상 마음의 중심을 잃지 말고,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이고, 과감하게 액셀을 밟아야 할 때는 액셀을 밟으며 속도를 높이는 등 처한 상황 상황에 딱 들어맞는 지혜롭고 조화로운 삶이 행복한 삶이다.
언제나 서두르면서 액셀을 밟는데 치우치거나, 언제나 소심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데 치우침 없는 삶이 바로 주역이 강조하는 음양화평(陰陽和平)한 중정무구(中正無垢)의 삶이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중용(中庸)의 삶이고, 불교에서 역설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삶과 다르지 않다. 졸리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잠이 아닌 밥을 먹는 삶, 나아 갈 때 나아가고, 멈출 때 멈추며, 물러날 때 물러나는 가운데 억지로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아름답고 멋진 삶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