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가의 열두달, 3월
교육현장
경칩이 막 지났다. 경칩은 땅속에 들어가 겨울잠에 빠졌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며 땅 밖으로 나오는 날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절기다.
한서(漢書)에는 열 계(啓), 겨울잠 자는 벌레 칩(蟄) 자를 써서 계칩이라 하였는데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이름이 계(啓)이므로 계 자 대신 경(驚) 자를 써 경칩이라 하였다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2월에야 비로소 천둥이 소리를 내고 번개가 치는데,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이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다' 소개한 것을 보면 놀랄 경(驚)자를 쓴 유래도 짐작할 수 있다.
정원이든 텃밭이든 작은 마당이라도 가꾸는 사람들에게 3월은 무척 바쁜 달이다. 아마 열두달 중 가장 바쁜 달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가을에 떨어져 겨울을 묵은 낙엽 더미를 살살 긁어내 보면 그 속에 수선화, 튤립 등 초록 새싹이 씩씩하게 고개를 내밀고 스노우드롭은 어느 그늘에서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렇게 신비롭고 변화무쌍한 3월은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과 `더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먼저 3월에 하고 싶은 일! 새봄 아닌가? 마당을 가꾸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낙엽 더미 긁기, 괭이질하기, 땅 파기, 흙 일구기, 씨앗과 모종 주문하기, 물주기, 잡초 뽑기, 씨뿌리기, 잔가지 다듬기 등등 이런 실제적인 일을 열심히 한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작은 봉우리의 꽃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새싹을 건드려보고 그 짱짱함에 놀라기도 한다. 물론 아프고 뻐근한 몸을 뉠 때 아구구 소리를 내며 누웠다가 해가 뜨면 반짝 일어나 하루 일과를 또 시작한다.
그럼 더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강아지를 키우고 나면 강아지를 빗댄 속담이나 상투적인 표현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같은 이치로 손바닥만한 마당이라도 가꾸어본 사람은 `살을 에는 추위'니, `서릿발 같은 동장군'이니, `된서리'니 하는 표현이 그저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박사과정 첫 학기에 3월 학생들 실습을 위해 구입한 식물들을 몽땅 얼려 죽인 적이 있었다.
내 식물이라서 원래 추위에 약하기도 했지만, 3월 동장군이 마지막 맹위를 떨칠 때 정원가는 속수무책 당하기 마련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뭔가 해결할 방도가 있다. 그러나 날씨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가 노력해서 극복 가능한 일이면 좋으련만 날씨는 언제나 그 위에 군림한다. 아무리 열정을 다해 기도해도 햇빛 한 줌, 비 한 자락 만들 수 없는 게 우리 아닌가?
사실 정원가가 성장하는 것은 바로 이때다. 때가 되면 싹이 트고, 꽃봉오리가 터지고. 잎이 돋아나 무성해지는 바로 그때, 섭리를 아는 것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고 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리고 그 무력함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무릎 꿇을 때 비로소 우리의 정원과 텃밭이 조화롭고 건강하게 자라난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경칩 시기는 대체로 개학 첫 주와 늘 맞물린다. 아마도 겨우내 움츠렸던 공부가 기지개를 켜고 앞으로 점점 따뜻해질 날씨에 움직일 준비를 하라는 신호처럼 말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을 꽃이나 채소 가꾸는 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람 키우는 것 역시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일을 구별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사실 너무 하고 싶은 일에 치우쳐 사람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순리 앞에 무릎 꿇는 겸손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