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수표란?
시론
불교의 중요 가르침 중에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법문이 있다. 하나의 같은 물을 놓고도 천계(天界)의 신(神)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 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것이 `일수사견` 법문의 내용이다. 같은 물을 놓고도 각자 각자의 업식(業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며 제각각의 견해를 주장-집착하는 가운데 점점 자신만의 우물 속으로 추락하는 것을 경계하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각자의 업식에 따라서 똑같은 물도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물로, 피고름으로, 보금자리로 제각각 다르게 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나의 동일 대상을 놓고도 보는 사람의 업식에 따라 그 견해와 주장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설파한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이란 가르침도 있다. 시안견유시(豕眼見惟豕)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 국사인 무학 대사가 설한 가르침으로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의미다.
돈을 좋아하는 업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수표가 귀하게 여겨지며 가장 눈에 잘 보이지만 뼈다귀를 좋아하는 업식을 소유한 개에게 수표는 먹지도 못하고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과 개의 경우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인생 목표를 설정했는가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과 목표는 얼마든지 서로 상이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온갖 경험들에 대한 기억 뭉치인 업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 외에도 현재 각자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보는 시각이나 견해 및 주장과 중요성 및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든다면 추운 남극을 횡단하는 상황에서는 따듯한 한점의 온기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막을 횡단하는 상황이라면 따듯한 한점의 온기보다는 시원한 물 한 잔이 더 그립고 귀하게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각자의 처한 상황을 배제한 채 자신의 입맛과 취향을 기준으로 무조건 따듯한 온기가 소중하다느니 시원한 한 잔의 물이 더 귀하다느니 하는 이분법적 견해를 피력하면서 무의미한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전혀 없다.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나 상대방의 성향을 잘 헤아려 이해함으로써 원활한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것이 좋다.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선 상대의 성향 및 그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 뒤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여유로운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
개가 멍멍 짖고 수표보다도 냄새나는 똥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서 무조건 꾸짖거나 얕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개보다 오히려 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대 눈의 티끌보다 내 눈의 들보를 빼내는 일을 중시하면서 그 어떤 주의-주장에도 물들지 않은 갓난아기 같은 순수 의식 내지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무아(無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광명이세 홍익인간` 즉,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자비로운 보살, 심령이 가난한 독생자, 무애자재(無碍自在)한 도인, 지행합일의 군자들로 넘쳐나는 아름답고 멋진 2024년이 펼쳐지길 간절히 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