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발견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코로나가 언제 우리에게 일상의 삶을 빼앗아 갔었는지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너무 쉽게 잊혀진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물론 코로나로 많은 피해를 입거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지금의 모습은 아주 오래전 전염병의 피해가 역사의 한면을 장식했던 것처럼 그렇게 너무 빨리 잊혀진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이 들어 씁쓸합니다. 아직도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다고 확실한 치료법이나 대단한 약이 나온것도 아닌데도 이젠 감기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전염병이 되어버렸으니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확실한 백신이나 치료법이 나와 자유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가 모두 잘 알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코로나에 대한 이러저러한 상식들을 많이 알고 접하게 되었지만 사실 확실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 없는게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달라진 것은 바로 `태도' 일것입니다.
아직도 충격적인 코로나의 숫자 환자는 1번부터 범죄자처럼 취급받는 사회적 분위기의 태도가 형성되었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부터 코로나에 대한 태도까지 처음 겪는 일이라 혼란스럽고 문제가 많아서 너무나 부정적인 태도가 형성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어느정도 그 태도가 변하여 범죄자로 취급하는 일도 잘못되었었던 일이라고 바로 잡게 되었고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도 역시 많이 달라진게 사실입니다.
11월은 풍성한 추수의 계절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추수감사절의 큰 절기도 있습니다. 감사의 계절이고 풍성한 나눔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에 기사회생의 기쁨보다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망이 크고 찾은 기쁨보다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며 남은 시간의 즐거움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들의 현재 모습일 것입니다.
감사의 소리와 즐거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라면 보면 볼수록 남의 떡이 커 보임을 어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감사는 찾아오거나 생겨나는 그리고 더욱이 무언가를 대단하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나 그게 무엇이든 우리의 선택된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회복이 먼저 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찾았을때의 회복없이 요구하는 그 어떤 태도도 그에게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의 계절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임을 회복해야 감사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회복입니다. 나의 본연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던 그 귀한 자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귀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의 삶을 회복하여 감사가 풍성한 11월의 계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