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 `제천청풍승평계'

충북 역사기행

2023-02-06     김명철 제천교육장
김명철

 

제천의 이미지는 시멘트 산업과 절도교통의 중심지라는 예술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국악과 예술이 꽃피던 문화 예술도시의 품격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최근에 주목받는 `제천청풍승평계'다.

제천청풍승평계는 조선 말기 악성 우륵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청풍(淸風)에서 악성 우륵의 음악예술을 계승하기 위하여 1893년 우리나라 최초로 청풍유지가 국악단을 조직하여 운영한 국악단체였다고 전해져 왔다. 130년 전 청풍도호부 때 큰 규모의 국악단체인 제천승평계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제천군지'에 단원들의 명단만 전해졌던 것을 직계 후손과 족보 등이 확인되었다. 80년 만에 모 일간지 기자의 노력으로 기사화되면서 우리나라 국악계를 비롯하여 제천시민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고종 30년(1893)에 청풍의 유지 33명이 우리나라의 고전음악의 계승보존책으로 506률을 전승발전하기 위하여 청풍승평계를 조직하였다. 그후 1918년에 속승평계를 재조직한 43명은 후세 후손에게 고전음악을 계승할 목적으로 국악을 가르치고 수련하여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국악단의 구성과 단원들의 수련에 관해서도 알려지게 되었는데, 청풍승평계의 조직은 수좌(首座), 통집(統執), 주찰(周察), 부주찰(副周察), 영사(領司), 부영사(副領司), 교독(敎督), 총율(摠律), 율원(律員) 등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청풍승평계의 율원은 매월 16일에 전원이 회집하여 한벽루(寒碧樓)에서 음악 53장(章)을 고련(敎鍊)하고 강습(講習)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악기의 종류도 확인이 되는데 청풍승평계 율원(단원)의 출자로 풍류가야금(風流伽倻琴), 산조가야금(散調伽倻琴), 양금(洋琴), 현금(玄琴),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 피리, 젓대, 단소(短簫), 장고(杖鼓) 등의 관현타악기를 구입하여 연주하였다.

청풍승평계의 운영을 위해 규약도 있었는데 매월 16일로 정하여 교련하였으며 10냥씩 갹출하여 변리를 늘여 악기를 조성하며 수리와 보수에 사용했다. 그리고 매년 춘추에 모든 회원은 승경을 유람했다는 것이다. 특히 술주정과 싸움을 시작하는 폐단은 중벌로 다스렸으며, 젊은 회원이 연장자를 능멸하고,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겨 투쟁하는 폐단은 엄벌하고 애경사에 부조금을 거두어 일제히 방문하여 위로하거나 축하하는 공동체적인 단체였다.

청풍승평계는 일제강점기에도 끊어지지 않고 국악을 발전시켰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인하여 악기가 전부 유실되고 일부 양금(洋琴) 등은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평등사에 보관했으나 안타깝게도 충주댐 수몰로 유실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2022년 10월에 제천문화원에서 주관하여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국악계의 중심 뿌리 찾기' 제천승평계 학술 세미나였다. 첫 번째 발표자로 기조강연을 한 국악학자인 중앙대 이형환 부총장은 “현재까지 자료를 추정해 보면 제천지역 청풍승평계는 아마추어 국악단체가 아닌 전문 연주 단체라고 추정된다.”라고 평가하면서 정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통해 제천지역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도시로 각인되고 지역의 이미지 쇄신은 물론 찬란했던 전통 예술의 역사적인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제천청풍승평계의 놀라운 점은 이러한 대규모 악단을 관에서 조직한 것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형성했다는 것”이라는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의 발표에서 130년전 의병항쟁과 더불어 청풍승평계 또한 제천의 시대정신과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