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코로나(1)
세상엿보기
우리 집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식탁에 오르는 단골이 목삼겹살이다. 고기 두 쪽과 버섯, 마늘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구워 내놓으면 몇 가지 채소 반찬 사이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메뉴가 된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요리하기에도 간편하고 내 입맛에도 좋지만 요즘 육식에 대한 회의가 크다.
시작은 친구 때문이었다. 이제 가보고 싶은 곳이 더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세계 곳곳을 다녔고 제주 올레길은 물론이고 국내의 걷기 좋은 길을 누비던 친구다. 한두 해 전부터 무릎이 아프다며 오래 걷는 게 부담스럽다고 해서 함께 걷자고 하고픈 마음을 접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오십견이 와서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니, 가을 즈음에는 모든 관절마다 아프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아픈 데가 생길 수는 있지만,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온몸이 아프니 혹시 채식이 원인인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친구의 영양을 걱정하던 터라 이때다 싶어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여기 봐. 아미노산이 있어야 단백질을 만들지? 아미노산이 20종인데, 우리 몸에서 합성되지 못해서 꼭 음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필수 아미노산이 8개야. 효소도 호르몬도 다 단백질인데, 아미노산이 공급 안 되면 효소도 호르몬도 못 만드는 게 있어. 그러니까 고기를 좀 먹어 줘야지. 애들한테는 가르치면서, 과학 선생이 왜 그래?'
그러나 직업의 전문성까지 들먹인 내 뻔한 작전에도 그렇게 쉽게 설득될 친구가 아니었다. 과학 교과서까지 펼쳐 보이며 열변을 토하는 내 모습에 친구는 조용히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던 중 존 맥두걸의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이란 책을 알게 됐다. 우선은 친구가 동참하는 채식에 대해 알고 싶었다. 단백질은 근육을 만들고 세포를 건강하게 하는 우수한 영양소이고 탄수화물은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당뇨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영양학 지식을 나도 신봉하고 있었다. 우유는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완전식품이고 비타민은 잘 챙겨 먹어야 하고 소금과 설탕은 멀리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친구도 틀렸지만 나는 더 많이 틀렸다. 친구는 영양제에 덜 의지해야 하고 나는 고기와 유제품이 좋은 음식이라는 내 상식의 근거를 의심해 봐야 했다. 저자의 의견이 모두 절대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합리적 의심은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1914년 멘델 박사의 `동물 단백질과 식물 단백질이 쥐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동물 단백질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오고 있으니 이러한 신념이 인간의 혀와 곳간에 얼마나 매력적이었나 알 수 있다.
그러나 6개월이면 성체가 되는 쥐, 풀로 섭취한 영양소를 단백질과 지방으로 전환하는 효소의 비율이 높은 소, 동물 단백질을 소화하는 효소가 많은 사자와 달리, 인간은 쥐도 소도 사자도 아닌 고유의 체질을 가졌다. 우리의 몸이 어떤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우리의 조상이 무엇을 먹었는가를 보면 된다. 거대한 산업 경제에 의해 조작된 지식이 아니라, 인간 DNA에 새겨진 메시지를 순수하게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책을 세 권 사서 주변의 아끼는 사람들에게 릴레이로 읽자고 했다. 제목을 보면 채식을 권하는 거 같아서 쉽지 않다. 단백질과 유제품, 영양제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굳건하게 일반화되어있는지 내 가족도, 가장 가까운 친구도 말하기 어렵다.
친구가 채식을 말할 때 내가 보인 반응을 생각하면 말해 무엇할까. 삼겹살과 코로나의 연관성까지 가려면 만릿길이다. 그런데 한방이면 나는 첫걸음에서 주춤한다.
`너 참 오래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