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매력과 향기(1)

김기원의 단말쓴말

2020-10-07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나훈아! 그가 돌아왔다.

트로트 열풍이 부는 이 땅에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가황(歌皇)이.

지난 9월 30일 KBS-2TV가 마련한 `2020 한가위 대축제-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개선장군처럼.

무대에서 모습을 감춘 지 15년 만에 `명자야', `테스형'같은 주옥같은 신곡을 장착하고 한가위 달 밝은 밤에 유성별처럼 나타나 뭇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랬다. 고향, 사랑, 인생이란 주제를 단 3막으로 꾸며진 공연이 속된 말로 대박이 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언택트(비대면) 공연이었음에도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이 그랬고, 화려한 퍼포먼스와 농익은 노래가 그랬고, 공연 중 행한 언중유골이 그랬다.

74세의 가황 나훈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과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겠다며 출연료 없이 열정적인 스페셜공연을 했고, 인구에 회자될법한 의미심장한 말들을 공연 사이사이에 토해낸 여운이 큰 탓이다.

의사와 간호사와 협조자들을 코로나 극복의 영웅이라며 감사를 표해 박수를 받았고, 세월의 무게와 가수라는 무게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목에 훈장까지 달고 살 수 없어서란 훈장상신 사양의 변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자신을 초청하여 공연케 한 KBS에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며 `국민소리를 송출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 날거라'고 점잖게 일침을 놓았는가 하면,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며 `여러분 같은 보통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킨다'고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묘한 말도 했다.

수위조절을 절묘하게 한 시국비판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의 단면을 보여준 언행이기도 해 곱씹게 한다.

공연이 끝난 지 1주일이 지났는데도 나훈아발 감동과 울림의 여진이 사그라지지 않고 정치권의 아전인수로 번져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가수 나훈아.

그는 내 마음 한구석에 소금처럼 스며 있는 화롯불 불씨 같은 존재이다.

민증 나이로 7살 아래인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의 노래를 부르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암울했던 청소년기에 그의 노래는 울분을 삭이는 진정제가 되었고 잡초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꿈틀대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중3 때(1969년) 발표된 `사랑은 눈물의 씨앗'과 `님 그리워'그리고 고3 때(1972년) 발표된 `고향역'은 그 시절 18번이었다.

먼지 흩날리는 신작로를 걸으면서 불렀고 논두렁 밭두렁을 걸으면서도 불렀었다.

남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던 나훈아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쓴 노랫말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싱어 송 라이터가 되었다.

하여 가요계에 쌍벽을 이루던 남진과의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비교우위에 서는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고 가황의 위용을 갖추는데 알파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가 800여 곡이나 되는데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고장 난 벽시계', 신곡 `테스형'처럼 노랫말이 시인들이 빚은 시들이 무색하리만큼 서정적이고 의미심장해 유행을 타기에 걸맞아서이다.

어쨌거나 그는 자칭 꿈을 파는 유행가 가수다. 흐를 流 갈 行 노래 歌이니 어떤 가수로 남느냐는 우문이란다.

가수는 꿈을 파는 직업이기에 꿈이 고갈되면 노래를 접고 가는 것이라고.

노래 한 곡을 만들기 위해 6개월 이상 정성을 들이고 지독하게 연습한다는 그는 이 시대에 진정한 프로이다.

그래서 나훈아는 74세에도 2시간 넘게 무대를 쥐락펴락하고 관중은 열광한다.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