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

김기원의 단말쓴말

2020-07-22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사람 꼴과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준동도 그렇고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도 그렇고 균형을 잃어버린 국회 사정도 그렇고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대책도 그렇고 빚더미에 앉은 나라 살림과 민생경제가 또한 그렇습니다.

미래세대의 희망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고 자포자기까지 하는 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극단적 선택이 웅변하듯 우리 사회에 믿고 기댈만한 인물과 언덕이 없다는 허탈함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개인의 삶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고 살아야 할 사회구성원들이 몰이해와 공감부족으로 서로 다투고 갈라지고 자해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인과 조직과 단체들이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다름을 견원 시 하고 차이를 배격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고약한 버릇이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번져서입니다.

정치권의 진영논리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입니다.

이해는커녕 말꼬리를 잡아 상대를 흠집 내고 폄훼해야 즉성이 풀리는 공감부재의 시대입니다.

공감대가 있어야 화해도 있고 타협도 있는데 서로 적대하고 대립하니 분란과 좌초만 양산됩니다.

그러므로 이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저마다 이해의 폭을 넓히고 공감의 지평을 확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과 국가에 미래가 있습니다.

이해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입니다.

영어 understand에 이해의 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해하려면 상대보다 아래에 서라고, 상대보다 낮아지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보다 낮은 자세로 상대를 바라보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의 생각과 형편을 역지사지하면 이해되지 않을 게 없습니다.

작금의 한국인들은 정치이야기를 하면 사달이 벌어집니다. 가족 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금기입니다.

진보는 보수를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꼴통들이라고 업신여기고, 보수는 진보를 내로남불 하는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서로 지고는 못사는 까닭입니다.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입니다.

저마다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처지가 달라 상대의 의견과 주장에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득실이 첨예하게 걸려 있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공감한다는 건 긍정하는 겁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공감이 되면 격하게 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를 끄덕거리거나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면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으니까요.

어쨌거나 공감의 첫걸음은 이해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구나, 저 자리에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공감의 여지도 생겨 소통이 원활해집니다.

죽기 살기로 사랑했던 부부가 어느 날 원수가 되어 갈라서는 것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마스크 쓰고 승차하라는 버스기사를 폭행하는 것도, 비위에 거슬린다고 아버지뻘 되는 아파트경비원을 구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해부족과 공감 부재에 기인합니다.

아무튼 이해 잘하고 공감 잘하는 이가 능력자이고 행복을 누릴 유자격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입니다.

그런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많아야 나라다운 나라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이해와 공감은 화해와 타협의 마중물이자 상생과 공존의 디딤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혼자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야 하고 서로 연대해서 살아야 하므로 이해와 공감의 달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도 그대도.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