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윤석열대통령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회장을 대동하고 네덜란드 반도체장비 생산기업 ASML 본사를 방문했다. 대통령과 빌렘-알렉산더 국왕은 방문기념문구가 새겨진 웨이퍼에 서명도 하고 클린룸도 둘러봤다. 연말에 사진과 함께 모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3건의 MOU도 체결했다. 첫 번째는 현장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아카데미'를 신설한다는 MOU다. 두 번째는 ASML이 삼성전자와 함께 1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EUV(극자외선) 기반으로 초미세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센터'를 한국에 설립하는 MOU다. 세 번째는 SK하이닉스가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개발을 공동으로 한다는 MOU다.
인공지능, 스마트폰 등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EUV 노광장비(반도체 핵심기술인 회로도 그려주는 장비)를 생산하는 전 세계 유일한 기업인 ASML과 MOU를 체결하고 앞으로 투자·협력 관계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으니 더 말할 나위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같은 MOU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선 MOU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중요한 문제점도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MOU가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다. 양해각서 교환 이후 본 계약서의 내용이 양해각서와 많이 달라질 수 있고 심지어 협약이행을 위한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더뎌지거나 무산돼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번째는 위 내용의 준수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사용할 재생에너지가 충분한 지 여부다.
ASML은 2025년까지 회사 운영 과정에서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넷제로를 선언한데 이어 태양광 확대계획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자사 공급망 그리고 2040년까지는 고객이 ASML장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탄소 발생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다시 말하면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하는 RE100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라고 ASML 탄소중립 보고서는 걱정하고 있다. 충분한 재생에너지가 공급된다면 별 문제없이 MOU 체결대로 추진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행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국내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업무협약(MOU) 맺은 후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투자 진척이 안되고 있는 사례도 있다.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기업인 에퀴노르코리아는 한국남부발전과 `추자도 인근 해상풍력 프로젝트 협력 모색'을 위한 업무협약을 2023년에 체결했다. 양 기업은 추자도 해상의 우수한 바람 자원을 공동개발하고 미래에너지 보급 확대에 나서기로 했지만 아직 오리무중이다. 세계 1위 풍력발전기업 베스타스도 지난해 1월 대통령이 세계경제포럼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할 당시 3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하고 3월 MOU를 체결했지만 풍력터빈 공장이 어디에 들어설지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국내 재생에너지의 불확실성이 글로벌 에너지기업의 한국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다. ASML의 MOU 이행여부도 충분한 재생에너지 공급이 최대 관건이다.
현 정부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문재인정부가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 대비 원전비중을 8.5%포인트 높이고 재생에너지는 8.6%p 낮췄다. 역주행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ASML 업무협약이 태산명동 서일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