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언저리 낡은 집 한 채. 처마를 받친 기둥은 삐딱하게 기울고 흙벽돌은 허물어져 깨금발 들면 방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방안 천정은 무너져 방바닥에 주저앉듯 내려앉았다. 합판으로 만든 부엌문짝은 돌쩌귀가 떨어져 땅바닥으로 한쪽 문짝이 툭 떨어지고 부엌찬장의 녹슨 경첩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켜 안고 있었다. 훅하고 쓰러질 것 같은 폐가, 낮은 담장보다 웃자란 잡초는 집안 밖을 점령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듯하지만 마당에 서면 분명 명당인 듯 햇살 좋은 바람이 아늑하게 품에 안긴다.
야트막한 마루 밑에 너부러져 나뒹구는 네 바퀴의 롤러스케이트 한 짝, 머리는 바닥에 고꾸라져 오랜 세월의 분진을 가득 뒤집어쓴 채 한쪽 바퀴는 하늘을 향해 엉덩이를 번쩍 들고 있었다.
누구나 한가지쯤 가슴속에 되돌리고 싶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롤러스케이트, 아들만 둘인 우린 아이들 아동기에 귀촌했었고 당시 롤러스케이트가 한참 유행이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귀촌 생활이지만 혹여나, 아이들 기세가 꺾여 약해질까 야광테두리에 달리면 불이 번쩍번쩍 거리는 롤러스케이트를 사 주었다. 허나, 어리석고 둔하게도 한번 사면 다 닳아 해질 때까지 사용할 줄만 알았지 아이의 발이 커진다는 사실을 아직 생각지 못했던 나다.
어느 날, 큰아이가 엉거주춤 머뭇거리는 모양으로 걷는 게 아닌가. 개구진 아이였기에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러는가 했지 별문제 있나 싶었다. 예상치 못하게 쪼그마한 아이의 발톱이 새까맣게 죽고 언저리가 붉은 듯, 푸른 듯 묘한 모양새다. 애어른인 큰아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부모가 어렵게 산 것을 안 것인지 롤러스케이터가 작다는 소릴 못하고 발가락을 구부려가며 타고 있었던 거다. 신상품만 찾는 요즘 세태에 아이들에게 이방인 같은 존재일 게다. 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아프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하고, 새로 사 달라는 말도 못했던 아이. 어쩜 동생한테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고통을 참아가며 네 바퀴 위에 통증을 싣고 다녔지 싶다. 아리다. 마루 밑에 저렇게 분진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짝 잃은 낡은 롤러스케이트, 그 위에 지난날의 우리 아이들 모습이 얼비춘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추억을 켜켜이 켜 안고 어쩌다 저리 혼자가 되었는지 알짝지근하다.
지난날의 귀촌, 나름 멀리서 찾는 행복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찾은 신조어인 소확행, 워라밸이라 자부했었다. 비록 문화 인프라, 멀리 있는 편의시설, 물건구입이 불편하지만 도시생활보다 더 부지런하게 하루를 열고 닫는 일과는 건강을 덤으로 주었고, 자연에서 주는 묘한 행복감이 이었다. 날마다 잡초와 경쟁이라도 하듯 달리고 달리는 일상이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소확행이었다. 때문에 아이들의 또래 관계, 사회성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에 돌이켜보면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전원생활은 어른들의 세상이지 아이들에겐 맹지였다. 제아무리 뼈대를 세우고 가지를 만들어 옷을 입혀 작품을 완성하듯 마음을 다해 열정을 쏟아 부어도 또래 관계는 늘 허기가 져 마음속을 태웠었다. 산자락 끝 우리 집, 아이들도 놀이문화가 많지 않았기에 유일무이 롤러스케이터를 타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지 싶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이 지나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초야를 떠나 도심으로 이사를 하면서 전원은 또 다른 선망이 되었다.
빠르게 달리는 현실 속에 천천히 느리고 더디게 걸어온 듯 삶의 무게가 둔중하게 내려앉은 폐가, 나무에 바람이 걸린다. 오도카니 서서 숙성된 와인처럼 추억을 삭히면서 걸어온 길을 찬찬히 자맥질해 본다.
오늘 밤, 그리움으로 덧칠된 참으로 긴 밤이 될 것 같다.